[국감현장] "이제 너는 없는데"…직장내 성희롱에 딸 잃은 아버지의 오열

입력 2018-10-26 19:11
[국감현장] "이제 너는 없는데"…직장내 성희롱에 딸 잃은 아버지의 오열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딸아, 네가 유학 가기 전 함께 서울에 온 적이 있었지. 이제 너는 없는데 서울에 오니 생각이 많이 난다. 아빠는 이제 할 거 다 했으니 이제 좀 쉴게."

26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대상 종합감사에서 김모씨는 참고인석에 서서 울먹였다.

김씨는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으로 2016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국거래소 직원의 아버지다.

자유한국당 문진국 의원이 신청한 참고인으로 국감에 출석한 김씨는 딸의 억울한 죽음과 직장 내 괴롭힘의 심각성을 성토했다.

그는 "유학까지 다녀온 딸은 비정규직으로 입사해 통역·해외스케줄 준비 등 영어와 관련한 잡다한 일을 도맡았다"며 "하지만 2012년 도쿄 출장 때 상사였던 가해자가 딸을 호텔 방으로 불러내 성적 농담을 하면서 모든 일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출장 이후 가해자의 괴롭힘과 성희롱이 지속했고, 사내에 악성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며 "딸은 간부들에게 성폭력·추행 사실을 알렸지만 묵살됐고, 어느 날 갑자기 업무가 부여되지 않더니 월급도 삭감됐다"고 밝혔다.

이어 "아이가 자기 회사에 '폭탄을 던지고 싶다'면서 괴로워했다. 시달림의 연속이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사측은 성희롱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가해자와의 또 다른 동반출장을 지시했고, 심지어 피해자의 옆 부서로 가해자를 배치하기도 했다.

지속적인 괴롭힘과 성희롱에 우울증을 겪던 딸은 휴직 3개월을 신청했지만 회사는 14일간의 휴일만을 허용했고, 결국 몇 개월 후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이후 회사는 특별감사를 통해 성희롱 사실을 확인했고,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은 과태료를 부과했다. 하지만 가해자는 딸을 정신이상자로 몰았고, 심지어 아버지인 김씨를 무고와 통신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김씨는 "가해자들은 거대한 회사가 자신들을 비호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일체의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며 "재판을 이기기 위해 문답형 스토리를 짜고, 고인에 대해 명예훼손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회사 입사를 종용하고, 아이를 보호하지 못한 죄책감에 우리 부부의 삶은 송두리째 날아갔다"며 "고인의 명예회복과 유족에 대한 진정한 사과, 적합한 보상이 필요하다. 우리 아이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꼭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씨의 떨리는 증언에 여야 의원들은 하나둘씩 눈물을 훔쳤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상사가 저지른 성폭력·성희롱에 고통받는 당사자가 도와달라고 손을 뻗쳤지만 다른 사람들이 피해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 죽음에 이르게 한 전형적인 사건"이라며 "회사는 반성하기는커녕 어떻게 하면 문제를 크게 만들지 않고 빠져나갈지 궁리한다. 특별감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진국 의원도 "피해자가 목숨을 끊은 2016년엔 지금보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덜했고 결국 과태료 처분만으로 사건이 종결됐다"며 "하지만 한국거래소가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한 정황이 발견된 만큼 고용노동부 장관은 반드시 조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viv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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