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강물에 떠내려가는 7인의 사무라이
알고 싶지 않은 것들·오천 번의 생사·혁명시대의 연애·미등록자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 강물에 떠내려가는 7인의 사무라이 = 정영문 소설집.
작가가 지난해 미국 텍사스주에 잠시 머물며 그 지역에 관해 쓴 소설이다. 이야기는 텍사스 친구 부부의 집 테라스에 떨어진 도토리에서 시작한다. 이어 케네디를 죽였다고 알려진 리 오즈월드와 리 오즈월드를 죽였다고 알려진 잭 루비, 잭 루비의 개들, 우주에 보내졌지만 개 라이카와 달리 유명해지지 못한 고양이 펠리세트, 한 농장에 뜬금없이 방치된 우주선 캡슐 모형과 들소 이야기로 이어진다. 또 카를 마르크스, 보니와 클라이드, 헤밍웨이, 그리고 7인의 사무라이를 이야기한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듯 이야기들을 이어나가며 작가는 독자들이 소설을 읽으며 소설에 대한 질문을 품게 한다.
워크룸프레스. 104쪽. 1만2천원.
▲ 알고 싶지 않은 것들 = 영국 작가 데버라 리비 에세이.
두 차례 맨부커상 최종심 후보에 오른 소설가이자 극작가, 시인 데버라 리비의 자전적 에세이로,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그의 작품이다. 3부작으로 계획한 자전적 에세이 시리즈 첫 권이다. 자신의 삶과 언어가 맞이한 위기를 페미니스트 시선으로 성찰한다.
이야기는 그가 런던 기차역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갑자기 터지는 울음을 가까스로 삼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삶의 위기에서 무너져 내리려는 자신을 추스르기 위해 예전에 묵은 스페인 마요르카로 떠난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유년 시절을 보낸 1964년의 요하네스버그를 떠올린다. 그곳은 차별과 폭력으로 얼룩진 곳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남아공 인권단체 멤버였고,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투쟁에 연루돼 경찰에 끌려간다. 그때 보모 마리아는 "용감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대모의 딸 멀리사는 세상이 여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니 여자들은 큰 소리로 말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런 기억들은 그에게 '왜 쓰는가'에 대한 답을 일깨운다.
한강, 김숨, 한유주, 박민정 등 여성 작가들이 이 책에 추천사를 썼다.
이예원 옮김. 플레이타임. 148쪽. 1만2천원.
▲ 오천 번의 생사 = 미야모토 테루 소설집.
20세기 후반 일본 순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환상의 빛', '금수' 등으로 유명한 미야모토 테루의 단편소설 9편을 담았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애절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장, 특유의 서정성을 담은 문체로 풀어낸 작품들을 만난다.
표제작 '오천 번의 생사'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빚을 떠안은 상태에, 설상가상으로 어머니까지 아픈 상황에 놓인 '나'의 이야기를 그린다. 어쩔 수 없이 친구가 거금을 주고 사겠다고 한 아버지 유품을 팔기 위해 수중의 돈을 털어 친구 집을 찾지만, 친구는 부재중이고 결국 추운 겨울 길을 걸어 돌아갈 처지에 놓인다. '나'는 아득한 길을 무작정 걸으며 여러 상념에 젖는다.
송태욱 옮김. 바다출판사. 256쪽. 1만2천원.
▲ 혁명시대의 연애 = 왕샤오보 소설.
중국 문학계에서 추앙받는 작가 왕샤오보(1952∼1997)의 대표작인 중편 '황금시대'와 장편 '혁명시대의 연애'를 묶었다.
'황금시대'는 중국 문화대혁명 때 지방의 인민공사 생산대에 배치된 천칭양과 왕얼이 벌이는 정사와 애정행각을 해학적으로 묘사한 소설이다. 작가는 성(性)을 문화대혁명이라는 특수한 시대에 저항하고 반항하는 원동력으로 삼으면서 그 본능적인 면에 대한 탐구도 놓치지 않는다. 성을 통해 권력에서 독립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혁명시대의 연애'는 주인공 왕얼과 그가 무장투쟁 때 만난 여대생과의 미숙한 사랑, 공장에서 자신에게 사상교육을 하는 여성과의 가학적인 애정 행위, 대학생 때 만나 미국 유학과 유럽 여행을 같이한 아내와의 관계 등 주인공의 애정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런 낭만적 애정 묘사를 통해 작가는 성을 억압하던 당시의 사회 모습을 희롱하고 권력의 폭력성을 드러낸다.
김순진 옮김. 창비. 364쪽. 1만5천원.
▲ 미등록자 = 히가시노 게이고 장편소설.
일본에서 '플래티나 데이터'로 영화화한 작품. 출판사는 작가와 상의 끝에 한국어판 제목을 새로 붙여 출간했다.
국가가 검거율 100%를 표방하며 국민의 DNA 정보를 수집하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과학과 기술이 특정 목적을 위해 오용될 때 얼마나 무서운 흉기로 돌변하는지 보여준다.
베테랑 형사 아사마가 러브호텔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현장을 둘러보지만 현장에 남은 유일한 증거는 체모 몇 가닥뿐이다. 특수분석연구소 연구원 가구라는 체모만으로 범인의 모든 정보를 예측한다. 그 배경에는 국민에게서 채집한 DNA 정보로 이룩한 'DNA 수사 시스템'이 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일치하는 정보 없음'으로 처리되는 사건이 거듭되고, 시스템 개발자가 갑작스럽게 살해당한다.
민경욱 옮김. 비채. 450쪽. 1만3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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