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의례 법전 '대한예전' 번역본 첫 출간
"황제 기본권과 정통성 일으켜 세운 초석"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고종이 1897년 선포한 대한제국의 국가의례를 규정한 법전인 '대한예전'(大韓禮典) 완역본이 처음으로 나왔다.
대한예전은 1897년 6월부터 1898년 10월까지 존속한 대한제국 사례소가 작성했으나, 사례소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1년 4개월 만에 해체되면서 완성되지 못했다.
하지만 훗날 황성신문에 논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실은 장지연이 편찬 작업을 계속해 1898년 말에 10책으로 만들어 고종에게 바쳤다고 전한다.
미완성본으로 남은 대한예전은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만 있다.
국학전문출판사 민속원이 펴낸 '국역 대한예전' 역자는 장서각 전임연구원을 지낸 임민혁 한서대 동양고전연구소 책임연구원, 성영애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학술연구교수, 박지윤 박사다.
임 연구원은 해제에서 "고종은 황제 즉위를 수락한 뒤에 중국의 옛 의례를 쓰지 말고 우리 의례를 우선으로 참작해서 간편한 것을 취하라고 요구했다"며 "조선 초기에 편찬한 국조오례의 체제와 내용을 기준으로 하되 중국 황실의 전례를 따라야 하는 불가피함을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대한예전은 크게 권1 즉위의(卽位儀), 권2∼5 서례(序例), 권6∼10 의주(儀註)로 구분된다.
즉위의는 황제 즉위식에 관한 내용이고, 서례는 국가 대사·음악·제복·의장 등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를 담은 부분이다. 의주는 길례(吉禮)·가례(嘉禮)·빈례(賓禮)·흉례(凶禮) 같은 중요 의례 절차를 정리했다.
임 연구원은 국조오례의와 대한예전 차이로 무엇보다 황제의 권위를 나타내고자 한 점을 꼽았다.
그는 "대한예전은 국장을 치르지 않은 민비를 황후로 책봉하고, 황태자와 황태자비를 책봉했다"며 "전하는 황제 혹은 폐하, 왕후는 황후, 대비는 태후로 개칭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조선시대 국새에 쓰지 못한 새(璽)나 보(寶)라는 글자를 사용하고, 어보 손잡이에 거북뿐만 아니라 용 장식을 달도록 했다"며 "길례에서는 하늘 제사인 원구제를 회복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대한예전은 제후국 고유 의례를 삭제하고, 대외관계 변화를 반영해 내용을 개편한 점도 특징이다.
임 연구원은 "대한예전은 비공인 전례서이기는 하나, 황제의 기본권과 정통성을 전통 격식에 맞게 일으켜 세우는 초석 역할을 했다"며 "이 예서는 국가적 신념의 결정체이자 민족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평가했다.
책은 3권으로 구성되며, 번역문과 원문을 차례로 실었다. 뒤쪽에는 원서를 영인해 수록했다.
총 1천980쪽. 세트 22만원.
psh5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