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슈끄지 피살에 정의 외치는 에르도안…정작 터키는 '언론탄압'
언론매체 100개 이상 폐쇄…세계언론자유지수 180개국 중 157위
(서울=연합뉴스) 김문성 기자 =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자국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에서 발생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사건과 관련, 책임자 처벌 등 '정의 구현'을 외치지만 정작 본인은 언론 탄압의 장본인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21세기 술탄', '제왕'으로 불리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집권 이후 터키는 언론의 암흑기에 빠져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독재적 권력에 걸림돌이 되지 않게 언론에 재갈을 물린다는 것이다.
그는 2014년 터키에서 처음 직선제로 치른 대선에서 승리했다. 2017년 헌법을 개정, 대통령 중임 규정을 도입한 데 이어 지난 6월 대선과 총선에서 모두 승리하며 2033년까지 집권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언론자유단체 '국경없는기자회'(RSF)가 올해 발표한 세계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 터키는 180개국 가운데 157위로 하위권이었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국제 언론단체인 언론인보호위원회(CPJ)는 터키에 수감된 언론인이 중국, 러시아, 이집트에 투옥된 언론인을 합한 것보다 많을 정도라고 평가했다.
2016년 쿠데타 시도가 발생한 이후 에르도안 대통령은 '정적 청소'에 박차를 가했고 언론도 주요 대상이었다.
쿠데타 무산 이후 100개 이상의 방송사와 뉴스 매체가 폐쇄 명령을 받았고 다른 매체들은 '친 에도르안' 기업인이나 기업에 팔린 이후 '정부 응원단'으로 탈바꿈했다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4월에는 진보·세속주의 성향 일간지 '줌후리예트'의 최고경영자(CEO)와 편집국장과 기자 등 14명이 징역 2∼7년 6개월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터키 정부가 쿠데타 시도 배후로 지목한 반체제 세력을 도왔다는 죄목이었지만 언론단체들은 비판적 언론에 대한 박해라고 반발했다.
터키의 한 원로 언론인은 "터키에서 언론은 깊은 혼수상태에 빠졌다"며 "금기가 있다. 어떤 것도 쓸 수 없다"고 WP에 말했다. 언론 종사자들이 정부의 '선전기구'로 남을지 윤리적 선택의 압박을 받는다는 것이다.
미국 세인트 로런스대학의 터키 전문가인 하워드 이센스탯 교수는 터키 TV 방송들이 주요 사안 보도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는 7개의 MSNBC나 7개의 폭스(뉴스) TV가 한 나라에 있는 것과 같을 것"이라고 말했다. MSNBC는 '반트럼프', 폭스뉴스는 '친트럼프' 성향을 보인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해 한 언론사 주최 행사에서 터키에 투옥된 언론인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당신이 감옥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언론인이 아니다. 그들은 테러범"이라고 처벌을 정당화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카슈끄지 피살사건을 정치·외교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자신을 진실의 대변자로 보이게 하는 동시에 경쟁국 사우디의 입지를 좁히며 터키의 국제적 평판을 좋게 하는 기회로 삼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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