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시설 이대로 안된다] ③국공립 확대·공공성 강화해야(끝)

입력 2018-10-25 05:00
수정 2018-10-25 06:32
[돌봄시설 이대로 안된다] ③국공립 확대·공공성 강화해야(끝)

"민간시설 인프라·인력·인건비 가이드라인 마련 필요"

"지원금 용도 명확히 하고 위법 땐 바로 퇴출해야"

(서울=연합뉴스) 신재우 고유선 기자 = 유치원 비리 실태가 드러난 후 어린이집과 요양원 등 돌봄시설에서도 비리를 끊어내고 공공성을 확립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아이를 돌보고 교육하는 일, 노인과 장애인을 보살피는 일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사회서비스라는 인식이 높아졌다.

하지만 '비영리' 원칙에 따라 운영해야 할 사회서비스를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에 맡긴 '원죄'로 대책 마련이 쉽지만은 않다.

전문가들은 돌봄 시설의 비리를 근절하고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국공립을 확대해 공공성을 강화하는 한편, 민간 시설에 대해서는 인프라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 등 기준을 마련해 엄정 시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드러난 비리는 '빙산의 일각'…행정력 동원해도 근절 난망

25일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국회 등에 따르면, 현재 비리가 공개된 사립유치원은 2013년에서 2017년까지 감사를 받은 1천878곳으로, 전체 사립유치원의 33%다.

이들이 부정하게 사용한 액수는 269억원에 달한다. 교육부의 추가 감사 결과에 따라 비리 액수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유치원보다 회계 감시가 강한 어린이집의 경우 지난 2년간 380곳이 33억원을 부정 수급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어린이집에서도 영수증 조사로는 잡아낼 수 없는 음성화된 비리가 만연한 것으로 알려져 실제 비리가 이런 수준에서 그쳤을지 미지수다.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급여를 받는 요양시설의 경우 복지부가 올해 상반기 320곳을 현지 조사한 결과, 94.4%(302곳)가 인력배치 기준위반, 허위청구, 급여지급 위반 등으로 적발됐다. 부정수급 규모는 64억원에 달했다.

94%를 넘는 적발률을 볼 때 전국 2만여개 시설을 전수조사하면 부정수급 규모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일 것으로 보인다.

이용자의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정부는 일단 감사 확대와 국가회계시스템 도입 방안을 내놨다.

'비리 의심'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골라 먼저 조사에 돌입하고, 전수조사도 시행해 비리 실태를 드러내겠다는 것이다.

또 정부가 관리하는 회계시스템인 '에듀파인'을 쓰지 않는 사립유치원에는 도입을 강제하겠다는 방침이다.

노인요양시설 조치 방안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10곳 중 9곳이 회계부정을 저지르고 있기에 대책이 시급한 상태다.

이번 조치는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측면에서 단기적으로 유효하지만, 근본 대책은 아니라는 게 대체적 평가다.

지자체 공무원 1명이 50곳의 어린이집을 담당하고, 국내 유치원 4분의 1이 몰려 있는 경기도의 유치원 감사 인력은 20명에 불과하다. 정기 점검조차도 꼼꼼하게 이뤄지기 힘든 구조에서 행정력을 동원한 시장 정화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 중 하나다.



◇ 민간-국공립 비율 설정해야…"민간, 진입기준 세우고 법 어기면 퇴출"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통해 정부가 이용자들이 요구하는 '공공성 확보', '국공립 확대' 방안을 제대로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돌봄서비스의 국공립 비중은 유치원 24.8%(원아 기준), 어린이집 7.8%, 장기요양시설 1.0%에 불과하다. 정부가 서비스 확대에만 치중해 여건을 갖춰 신고만 하면 시설을 열 수 있게 한 탓이다.

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회서비스에서 국공립 비중을 얼마 이상으로 유지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매년 꾸준히 늘려나가고, 민간 참여가 있더라도 공공의 책무가 질 수 있도록 참여 기준을 정확하게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대해서는 국공립 목표를 40%로 설정했지만, 요양시설에 대해서는 목표가 없다.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작되기 전인 2005년 참여정부는 '노인요양시설 국공립 비중을 50% 이상으로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2011년까지 한해 100개씩 시설을 늘리기로 했다. 또 민간 참여를 허용해도 개인은 배제하고 법인까지만 허용키로 했다.

하지만 2008년 제도 도입 이후 지자체가 주도적으로 시설 설립 의지를 보이지 않자 민간에 문을 활짝 열었고, 현재는 편의점이 생기고 없어지는 것처럼 개원과 폐원이 수시로 이뤄지고 있다.

양 교수는 "정부 재정이 들어가는 시설에 대해서는 인프라, 인력, 인건비 가이드라인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며 "비리를 저지를 수 없도록 지원금의 쓰임을 명확히 정해주고, 법을 어기는 원장은 바로 퇴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공립을 확충하는 동시에 국공립이 시장을 실제로 선도할 수 있도록 서비스 질을 높이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현재 어린이집의 경우 국공립이라고 하더라도 절반은 개인 원장에게 위탁돼 있다.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지 않는 무늬만 국공립 시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17개 시·도에 사회서비스공단을 설립해 사회서비스를 국가가 직접 제공하겠다고 약속했고, 지난 5월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사회서비스원 설립 법안'을 발의하면서 내용을 구체화했다.

남 의원은 "시·도에 사회서비스원을 설립해 새로 짓는 국공립어린이집이나 국공립요양시설을 국가가 직영하고, 원장과 보육교사, 요양보호사 등을 직접 고용한다면 지금과 같은 비리가 줄어들고 민간과의 경쟁을 통해 서비스 질이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 제정을 앞두고 어린이집을 사회서비스원 관리 영역에서 제외하려는 움직임이 생기는 등 민간의 반발이 심한 상태다.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은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서비스 인프라는 접근성이 중요하고, 경제·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며 "보육 등 다수가 이용하는 인프라는 지자체가 직접 운영해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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