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입성 '버닝' 이창동 감독 "한국영화 오스카 진출 머지않았다"

입력 2018-10-24 08:01
LA 입성 '버닝' 이창동 감독 "한국영화 오스카 진출 머지않았다"

코리언 시네마 투어링서 UCLA·AFI 등 현지 영화학도에 韓영화 특강

"버닝은 의도부터 결말없는 구조…청년의 분노도 미스터리 중 하나"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옥철 특파원 = "(아카데미 노미네이션에) 솔직히 큰 기대를 거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기대가 너무 멀리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내년 제91회 아카데미영화상(오스카) 외국어영화 부문에 출품할 한국영화로 선정된 '버닝'의 이창동 감독이 영화산업의 본고장 할리우드로 날아왔다.



다음 달 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개봉을 앞두고 출연 배우 스티븐 연과 함께 영화를 홍보하는 한편 LA 현지 영화학도들에게 한국영화 특강을 하기 위해서다.

이 감독은 23일(현지시간) LA한국문화원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버닝' 제작에 얽힌 뒷얘기와 한국영화의 전망 등을 털어놨다.

마침 지난 주말 대종상 영화제에서 '버닝'이 최고 영예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직후라서 피곤한 일정 속에서도 입가에는 미소가 묻어났다.

그는 중국, 영국, 캐나다를 거쳐 미국에 왔다. 멀리 떠나있어 대종상 시상식에서도 참석하지 못했다.

LA한국문화원(원장 김낙중)이 주최한 '코리언 시네마 투어링' 프로그램에 따라 AFI(미국영화연구소), UCLA(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 영화학도들과도 만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한 '버닝'은 주인공인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유아인)가 우연히 어릴 적 친구 혜미(전종서)를 만나고 혜미가 아프리카 여행에서 만난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이 등장하면서 이들이 겪게 되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았고 오스카와 골든글로브의 한국출품작으로 선정돼 올해 최고의 화제작으로 평가됐다.

비밀스러운 고백을 체험하는 주인공들의 복잡미묘한 심리 전개가 돋보이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이창동 감독은 "영화의 본고장인 이곳에서 버닝을 알리게 돼 색다른 느낌"이라고 했다.

다음은 이 감독과의 문답.

-- 오스카 진출이 한국영화계의 숙원 중 하나인데 어떻게 전망하나.

▲ 이곳에 온 목적 중의 하나이기도 한데, 한국영화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노미네이션이 한 번도 없었던 건 수준이나 작품성이 부족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본다. 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에 의해 (노미네이션이) 이뤄지는데 사실 (영화가) 좋고 나쁘고 떠나서 회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주어져야 하는데 그런 여건이 없었다.

그래서 첫 번째로 문을 여는 건 매우 어려울 거로 본다. 크게 기대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국민의 기대가 커서 실망이 커질까 봐 걱정이다.

하지만, 그 기대가 너무 멀지는 않다. 최선을 다해보겠다.

그건 다음번 한국영화를 위한 길, 이정표가 되니까 열심히 할 생각이다.

-- 대종상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는데 수상 소감을 전해달라.

▲ LA에 와 있는데 시차 때문에 통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새벽에 겨우 막 잠들었을 때 '버닝' 출연자 중 한 명이 전화했더라. 대종상 받았다고. (웃음) 그래서 잠이 확 달아나서는 그 이후로는 뜬눈으로 있었다. 약간 의외였고 기대 안 했는데. 직접 참석해서 감사 말씀드리지 못한 건 미안하다. 이 영화가 국내에서 흥행으로든 무엇으로든 아주 만족할 순 없는 것이었는데, 작은 위안이나 힘이 됐으면 한다. 여기 스티븐을 포함해 배우, 스태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 '1987','신과 함께' 등 경쟁작 중 대작이 많았는데 '버닝'에 어떤 강점이 있었다고 생각하나.

▲ (대종상) 심사위원들이 왜 '버닝'을 뽑았는지 짐작하기 어렵지만, '버닝'이 지닌 나름의 미덕을 다른 작품보다 약간 더 인정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 그동안 필름 영화를 고집해왔는데 '버닝'이 첫 번째 디지털영화다. 느낌이 다를 것 같은데.

▲ 필름을 굳이 고집한 건 아니지만 디지털을 찍기 시작할 때부터 저항감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어릴 때부터 필름 룩이 좋았다. 하지만 이제 필름을 찍으려고 해도 찍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현상도 하지 않아서 디지털로 할 수밖에 없다.

'버닝'의 경우 노을과 새벽 장면이 많아서 빛을 스크린에 가장 담기 힘든 시간대에 찍는 영화 중 하나였다. 그런데 디지털로 하니까 인공조명 없이도 충분히 자연광을 100% 담아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 '버닝'이 청년의 분노를 다뤘다는 평가가 많다. LA 관객들에게도 어필할 것 같은가.

▲ 청년의 분노를 다룬 영화이긴 한데 기본적으로 여러 겹을 가진 영화다. 청년의 분노는 그중의 한 겹이다.

이 영화는 미스터리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여러 얘기를 자연스럽게 하고 관객이 그걸 느낄 수 있는 구조로 돼 있다. 경제·사회·정치적인 문제가 다 포함된다. 우리 삶의 알 수 없는 매우 중요한 부분,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 더 나아가서 늘 접하는 서사, 즉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보고 있는 영화란 건 어떤 건지 그런 질문을 자연스럽게 하는 거다.

-- 외국에서의 반응은 어떤가.

▲ 런던, 파리, 캐나다를 거쳐 여기 왔는데 외국 관객들이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더 잘 이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분석이 필요할 거 같은데 의외였다.



-- '버닝'의 결말이 모호하다는 평가가 온라인 공간에서 뜨거운데.

▲ 결말의 모호함은 이 영화가 가진 시작부터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하루키의 단편소설 자체가 결말이 없는 소설이고, 결말이 없다는 것 때문에 이끌렸다.

작은 미스터리를 더 큰 미스터리로 만들고, 사건의 미스터리가 해결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세상의 미스터리라고나 할까 그런 걸 얘기하는 거다.

청년들이 열심히 노력해도 미래가 불안정하고, 반면 노력하지 않아도 많은 부를 이룬 같은 세대 청년도 있다. 이런 세상의 불공평함, 그로 인해 무엇 때문일지 모르는 분노, 무력감, 그리고 청년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이런 것들도 하나의 미스터리다.

남북분단 문제도 있고, 트럼프가 TV 화면을 통해 영화에 잠깐 나오기도 한다.

정치 또한 미스터리가 되는 것이다. 더 큰 미스터리를 연결하고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관객이 끊임없이 그 해답을 찾아가는 색다른 영화적 경험을 주고 싶었다. 흔히 볼 수 없는 이런 실험을 (주변에서) 높이 평가해주고 있는 것 같다. 결말이 없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게 관객을 더 헷갈리게 할 수 있고 때로는 실망스럽고 모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경험도 의미 없는 건 아니다.

-- 이 영화에서 '버닝'(burning)의 의미는 무엇인가.

▲ 말 그대로 '태우는 것'일 수 있다. 종수라는 작가지망생은 메타포어에 지나치게 민감하다. 다른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상상, 망상을 한다. 때로는 분노의 폭발일 수 있고, 어릴 적 꿈의 모습, 욕망이 실현되는 것, 탐닉하는 아름다운 대상일 수도 있다.

--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영화를 위해 제언한다면.

▲ 첫 영화인 '초록물고기'를 들고 1997년 밴쿠버영화제에 갔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 느낀 건 '아, 이 사람들이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 또는 관심 가지려는 의지 자체가 없구나'라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는데 지금은 세계 어디서든 한국영화를 제대로 소개하지 못하면 영화제 위상 자체가 문제 될 정도가 됐다. 웬만한 영화제는 한국 특집을 다들 했다. 지금은 그게 새로운 뉴스가 아닐 정도로 관심이 커졌다.

-- 한국영화가 상품성과 작품성이 같이 갈 수 있다고 보는가.

▲ 그건 매우 어려운 문제다. 한국영화나 다른 나라 영화나 마찬가지다. 양립하는 건 매우 어렵다.

메인스트림, 즉 대량배급 구조에 들어가긴 더 어렵다. 미국영화 아니고는 힘들다. 즉, 한국영화에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바라는 건 비현실적인 목표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영화 자체의 힘을 가지면 그 나름대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거라고 본다.

-- '버닝'을 OTT(인터넷 기반 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로 봤다. 영화산업의 플랫폼이 이제 극장에서 모바일로 전환되고 있는데 제작자 입장에서 어떻게 보나.

▲ '버닝'은 두 달 만에 IPTV에 풀렸다. 영화라는 매체의 플랫폼 변화는 어쩔 수 없는 추세인 것 같다.

극장용 영화가 기본 윈도라면 넷플릭스 영화가 어떤 영향을 줄 건지는 영화관계자도 분명히 예측하기 어려운 환경의 변화다.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로마'라는 영화가 넷플릭스로 소개되는데, 투자에 대한 확실한 보상을 원하는 영화제작 방식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는 영화에 일종의 기회를 준 케이스다. 그런 점에서 넷플릭스가 창작의 폭을 넓혀주는 기회를 줬다.

-- 이번에 8년 만에 작품을 냈는데 차기작은 몇 년 후에 볼 수 있겠나.

▲ 토론토영화제 때 길거리에서 만난 분이 다음엔 얼마 걸릴거냐고 묻더니만 (시간을) 4년 주겠다고 하더라. (웃음) 4년 안에 (차기작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 다행히 여러 프로젝트를 고민하던 게 있다.



oakchu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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