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나라에 왔다가…" 김해 원룸 화재 참변 남매 발인
아이들 다닌 교회서 주관…두 아이 여전히 위독, 오가지도 못해
(김해=연합뉴스) 정학구 기자 = "자녀들에게 좀 더 나은 환경, 더 좋은 경제 상황을 제공해보려고 조상 땅을 찾아왔는데 평안과 부유를 느껴보지도 못한 채 자녀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부모의 마음을 어찌 인간의 말로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발인 예식을 주관하는 교회 목사의 설교가 진행되는 동안 작은 빈소 안은 신도들의 흐느낌이 끊이지 않았다.
자신들을 할아버지의 땅 '고려'에 데리고 온 30대 젊은 부모의 참담함을 짐작이나 하는지, 원룸 건물 화재로 목숨을 잃은 고려인 3세 남매는 영정 속에서 해맑은 웃음을 띠고 있었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것이 죽음이라지만 관심 부족과 잘못된 현실 속에서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떠난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나그네처럼 이곳 저곳 다니다 고향이 아닌 곳에서 죽음을 맞아 더 마음이 아픕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아빠 엄마를 따라 '꿈의 나라' 한국에 왔다가 4살, 14살 꽃다운 나이에 저세상으로 떠나는 남매를 보내면서 '완전한 고향, 진짜 고향'을 갔다고 위로해보지만 흐르는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주말인 지난 20일 저녁 김해시 서상동 한 원룸 4층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목숨을 잃은 우즈베키스탄 국적 고려인 3세의 남매 발인식이 23일 오전 김해 시내 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두 아이의 어머니(38)는 눈물도 마른 듯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남편(39) 어깨에 몸을 기대고 교회에서 진행하는 발인 예식을 지켜봤다.
발인식이 끝나고 남매의 시신이 차량으로 운구되자 아이들의 어머니는 참았던 눈물을 쏟으며 흐느꼈다.
짧은 한국 생활을 맛본 남매는 화장을 거쳐 유골함에 담겨 다시 병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젊은 부모는 화재사고를 함께 당해 위독한 두 아이의 상태를 지켜보고 귀국 일자 등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병원에서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는 한 아이(12)는 숨진 남매의 다른 오누이고, 다른 아이(13)는 이들의 이종사촌이다.
3남매의 아버지가 2015년 먼저 한국에 와 김해에서 중소기업에 다니며 이듬해 아내와 아이들을 불러들였고, 올해엔 아이들 이모와 이종사촌 1명까지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당일 3남매의 부모는 모임에 가고 없었고, 이모도 마침 시장에 가 원룸을 비운 것으로 경찰 등은 파악하고 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김해 이주민의 집 수베디 여거라즈 대표는 "장기체류 이주민들이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제도는 있지만, 자녀들이 교육을 받고 정주할 수 있도록 복지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매의 부모 등 두 가족 7명은 좁은 원룸에서 불편하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참고 견디며 꿈을 키워가다 참혹한 변을 당했다.
지난 20일 김해 원룸 화재로 이들 외에도 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알려지자 경남교육청과 김해시, 아이들이 다녔던 교회 등에서 모금 운동에 나서고 도움의 손길을 건네고 있다.
b940512@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