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20·29'…넥센 샌즈가 모자에 직접 새긴 숫자들
트라우트 닮았다는 말에는 "통장 잔고까지 닮고 싶다"며 농담
"정말 즐거운 팀, 내년에도 돌아오고 싶다"
(서울=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넥센 히어로즈 외국인 타자 제리 샌즈(31)는 '9만 달러의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다.
시즌 막판 넥센 유니폼을 입은 샌즈는 정규시즌 25경기에서 홈런 12개를 몰아치며 장타력을 뽐냈고, 포스트시즌에서도 공수 활약을 펼치고 있다.
샌즈의 준플레이오프 타율은 0.250(12타수 3안타), 타점은 1점이다. 넥센 중심 타선이 침묵하는 상황에서도 샌즈는 타석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제 몫을 하고 있다.
그의 올해 연봉이 9만 달러로 KBO리그 외국인 선수 가운데 최저액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는 셈이다.
샌즈는 실력과 인성을 동시에 보여주며 빠른 속도로 넥센 구단에 스며들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건 바로 샌즈의 모자 위에 새겨진 '51·20·29'라는 세 개의 숫자다.
넥센은 포스트시즌 기간 세 명의 핵심 선수를 부상으로 잃었다. 등번호 29번 이택근은 정규시즌 최종전에 갈비뼈를 다쳤고, 20번 최원태는 아시안게임에서 얻은 팔꿈치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했다.
그리고 51번 이정후까지 준플레이오프 2차전 수비 도중 어깨를 다쳐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다.
포스트시즌에 출전하는 넥센 선수 전원은 29번과 20번을 모자에 새기고 있지만, 20일 경기에서 다친 이정후의 번호까지 빠르게 '업데이트' 한 건 샌즈를 비롯한 몇몇 선수뿐이었다.
22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릴 한화 이글스와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 앞서 만난 샌즈는 "물론 모자에 새긴 번호가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다"며 "(동료가 써준 게 아니라) 직접 쓴 것"이라고 말했다.
샌즈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손으로 꼽히는 유망주였다.
2010년 그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산하 마이너리그팀에서 홈런 35개를 때려 마이너리그 올스타 격인 'MLB 마이너리그 퍼스트 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같은 해 샌즈와 함께 이름을 올린 유망주로는 마이크 트라우트(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에릭 호스머(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마이크 무스타커스(밀워키 브루어스), 브랜던 벨트(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크리스 아처(탬파베이 레이스) 등이 있다.
이들은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그러나 샌즈는 2011년 빅리그에 처음 승격한 뒤 야구가 잘 풀리지 않았고, 결국 올해 KBO리그까지 오게 됐다.
넥센 입단 당시 "KBO리그에서 뛰게 돼 진심으로 기쁘다"고 말했던 그는 더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샌즈는 트라우트와 외모가 닮았다는 말에 "몇 번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얼굴뿐만 아니라) 통장 잔고까지 닮았으면 한다. 미국에서도 트라우트와 닮았다는 이야기에 이렇게 대답했다"며 유쾌한 농담으로 넘겼다.
마이너리그에서 머문 시간이 길었던 샌즈에게 KBO리그 포스트시즌은 색다른 경험이다.
샌즈는 "꽉 찬 관중 앞에서 경기하는 건 즐거운 일"이라며 "4위로 올라온 터라 긴장하기보다는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새 야구인생을 열어가고 있는 샌즈의 '코리안 드림'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화끈한 장타력에 친화력까지 보여준 터라 넥센이 그에게 재계약을 제의할 가능성이 크다.
샌즈는 "이 팀에서 정말 즐겁게 지내고 있으며, 내년에도 돌아오고 싶다"면서 "그런 마음은 접어두고, 일단 지금은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만 집중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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