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권력에 진실로 맞서다 피살된 언론인 카슈끄지"

입력 2018-10-22 10:33
"사우디 권력에 진실로 맞서다 피살된 언론인 카슈끄지"

FT "실세 왕세자 등장후 사우디 진로에 의구심 표명해 왕실엔 골칫거리"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중동 권력에 진실을 말한 언론인".

사우디 당국이 2주간의 부인 끝에 자국 출신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사망을 공식 인정하자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22일 그의 사망기사(obituary)를 냈다.

사우디의 유력 언론인으로 중동의 왕실에 반대하는 인사들을 두둔하고, 무슬림형제단을 옹호하고, 사우디 출신의 국제적 부호 알 왈리드 빈 탈랄 왕자와도 연계되는 등 현 사우디 지도부의 눈에 벗어날 행적을 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명문가 출신으로 미국에서 수학한 후 조국과 중동지역에서 언론인으로 명성을 얻었으나 진실을 추구한 자유주의적 언론관으로 조국의 전통적 권위주의에 저항하다 결국 비극적인 종말을 맞았다.



친지들로부터 '아부 살라'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카슈끄지는 사우디 내 많은 젊은이와 언론인들에 '멘토'와 같은 인물이었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사우디 내 많은 언론인이 이른바 실세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MBS)가 주도하는 현 사우디의 진로에 실망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경제개혁을 주장하는 왕세자가 오히려 최소한의 반대마저 가혹하게 탄압하는 데 좌절하고 있다는 것이다.

카슈끄지는 지난 수십 년간 중동 언론계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인물 가운데 1인이었다. 조부가 사우디 창설자인 이븐 사우드 국왕의 주치의였던 사우디 명문가 출신으로 사우디 왕실과 서방외교관들과 폭넓게 어울렸던 그는 언론과 왕실을 넘나드는 가교 구실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MBS 등장 이후 사우디의 진로에 대해 의문을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사우디 왕실의 골칫거리로 변해갔다. 카슈끄지는 살해되기 수일 전 한 친지에게 자신에 대한 살해위협을 시사했으며 한편으로 사우디로부터 소외되면서 외로움과 조국에 대한 향수에 시달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1958년생으로 성지인 메디나에서 성장했고 미국 인디애나대에 수학한 후 귀국해 1990년대 말까지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1차 걸프전 취재로 명성을 얻은 후 영자지인 일간 아랍뉴스의 부(副)편집자가 됐다.

카슈끄지는 사우디 왕실의 사고에 정통한 인물로 알려졌으나 권력층과의 관계는 부침이 심한 유동적이었고 많은 논란이 뒤따랐다.

사우디의 경우 대부분의 언론매체는 사우디 왕실이나 그 측근들에 의해 통제돼왔고 편집간부들의 임명은 사우디 공보부의 승인을 얻어야 했다.

2003년 카슈끄지는 일간 알-와탄의 편집국장에 임명된 지 두 달도 안돼 해임됐다. 당시 막강한 영향력의 종교경찰을 비판한 기사 때문이었다.

이후 그는 영국과 미국 대사를 지낸 투르키 알-파이살 왕자의 보좌관을 지내다 2007년 다시 알-와탄에 복귀했다. 그러나 다시 3년 후에는 사우디의 국교 격인 수니파 살라피즘을 비판하는 논평기사로 해임 압력을 받고 현직에서 물러났다.

이어 국제적 부호인 알 왈리드 빈 탈랄 왕자에 의해 TV 뉴스채널의 경영자로 발탁됐으나 바레인 야당인사를 출연시키면서 개국 첫날 채널이 폐쇄됐다.

2011년 아랍권에 '아랍의 봄'으로 알려진 민중봉기가 발생하자 카슈끄지는 무슬림형제단과 같은 이슬람 그룹에 동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비판을 받았다. 이후 사우디 정부가 형제단을 테러 조직으로 분류하면서 카슈끄지의 조직과의 연계설은 갈수록 문제가 됐다.

2016년 11월에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을 비판했다 당시 트럼프 당선자와 관계개선을 모색 중이던 사우디 지도부로부터 기사와 트윗 등 언론 활동을 금지당했다.

2017년 8월 범아랍 일간지 알-하이야트에 주간 칼럼을 게재하도록 허용됐으나 일련의 트윗을 통해 무슬림형제단을 두둔하면서 역시 해고당했다.

미국으로 활동 거처를 옮기면서 국내 친정부 언론인들로부터 배신자로 매도당했으며 최근 워싱턴포스트(WP) 칼럼을 통해서는 사우디의 개혁노력과 외교정책을 언급하면서 MBS에 구금 중인 활동가들을 석방하고 예멘전 개입을 종식할 것을 촉구했다. 마지막 칼럼에서는 사우디 당국의 언론통제를 비판했다.

yj378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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