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질하다 카슈끄지 사망?…의문 증폭에 왕세자 배후설 '모락'

입력 2018-10-20 16:53
주먹질하다 카슈끄지 사망?…의문 증폭에 왕세자 배후설 '모락'

사우디 발표에 시신 처리 설명 없고 '고문 후 토막' 터키 조사결과와 배치

왕세자 최측근 2명 경질돼 빈 살만 연루 가능성…美의회 등 독립조사 촉구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기자 =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실을 인정하고 사건 경위를 발표했으나 파장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용의자들과 카슈끄지 사이의 몸싸움이 '우연한 사망'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 곳곳에서 허점을 노출한 데다 오히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배후설만 증폭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 정부의 자체조사에 신뢰를 표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달리 미 의회와 전문가들은 이번 발표에 강한 의구심을 나타내며 독자 조사나 제재를 촉구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20일(현지시간) 외신들에 따르면 사우디 검찰은 카슈끄지가 지난 2일 이스탄불에 있는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용의자들과 대화를 하다가 주먹다짐이 벌어졌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밝혔다.

용의자들이 카슈끄지를 사우디로 데려가려는 의도를 갖고 그를 만나기 위해 이스탄불로 왔다는 것이 사우디 검찰의 설명이다.

사우디 정부는 이 사건과 관련, 고위 관리 5명을 경질하고 18명을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미국 CNN 방송과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사우디 정부의 공식 발표에서 카슈끄지의 시신에 관한 설명이 한 줄도 없다는 점을 근거로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카슈끄지의 시신은 아직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특히 살해 당시 녹음된 오디오를 근거로 터키 측이 내놓은 사건 정황과도 차이가 있다.

최근 터키 친정부 매체들은 이 오디오를 청취한 고위 관리 등을 인용해 카슈끄지가 총영사 사무실로 들어가자마자 미리 대기하던 사우디 요원 15명이 그의 손가락을 자르며 고문하다 불과 몇 분 만에 참수 살해하고, 법의학자의 지휘로 시신을 토막 내 2시간 안에 처리까지 끝냈다고 보도했다.

주먹다짐 끝에 우발적으로 살해됐다는 사우디 정부의 공식 발표와 달리 터키 당국이 입수한 증거는 치밀하게 계획된 살인이라는 정황을 담은 셈이다.

WP는 미 중앙정보국(CIA) 관계자들도 이 오디오 녹음을 들었다고 보도하고, 녹음 내용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백악관이 사우디 측의 해명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CIA에서 30년 넘게 근무한 사우디 전문가 브루스 리델은 WP에 사우디 정부의 발표와 관련, "내가 지금까지 본 최악의 은폐"라면서 "시신은 어디에 있고, 이런 설명을 내놓는 데 왜 17일이나 걸린 것이냐"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게다가 사우디 정부의 후속 조치는 그동안 사건과 무관하다고 선을 그어온 빈 살만 왕세자가 카슈끄지 살해의 배후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추정을 낳는다.

경질된 5명의 고위 관리 중 이름이 공개된 아흐메드 알 아시리와 사우드 알 카흐타니가 왕세자의 최측근 인사로 꼽힌다는 점에서다.

왕세자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알 아시리는 2성 장군 출신으로 예멘과의 전쟁을 설계한 인물이다. 빈 살만 왕세자의 신임을 받아 정보기관 부국장을 맡고 있다.

왕실 고문인 알 카흐타니는 빈 살만 왕세자의 커뮤니케이션 책임자로서 국왕과 왕세자를 "주인님"이라고 부른 트윗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의 트위터 팔로워는 135만 명이나 된다.

살해된 카슈끄지의 지인들은 WP에 알 카흐타니가 카슈끄지의 귀국을 설득하면서 왕세자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줄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 제안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이에 카슈끄지는 "농담하느냐. 난 그들을 조금도 믿지 못한다"고 일축했다고 한다.

미국 정부의 관리들도 CNN에 "이런 작전은 사실상 사우디의 지도자인 빈 살만 왕세자 모르게 이뤄질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사우디 정부는 카슈끄지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면서 빈 살만 왕세자가 이 위원회를 이끌도록 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우디 국가안보위원회와 외무부, 내무부 관리들이 이 위원회에 참가해서 한 달 내로 공식 보고서를 낼 계획이다.



이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비판도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미 의회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사우디의 발표를 '눈속임'으로 일축하면서 대응을 촉구하고 나섰다.

리처드 블루먼솔(민주·코네티컷) 상원의원은 CNN 인터뷰에서 "사우디는 시간을 벌면서 사건을 덮으려 하는 것이 매우 분명해 보인다"면서 "국제적인 조사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상원 외교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로버트 메넨데즈(뉴저지) 상원의원도 "우리는 국제적인 압박을 계속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화당의 입장도 다르지 않았다. 공화당 소속인 밥 코커(테네시) 상원 외교위원장은 트위터에서 "사우디의 스토리는 날마다 변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설명이 이치에 맞는다고 추정해서는 안 된다"며 미 행정부의 독립적인 조사를 요구했다.

랜드 폴(공화·켄터키) 상원의원도 "우리는 모든 무기 판매와 원조, 협력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사우디의 이런 행동에 대한 혹독한 대가가 있어야 한다"라는 트윗을 올렸다.

서맨사 파워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트위터를 통해 사우디 정부가 "새빨간 거짓말(카슈끄지가 살아서 영사관을 떠났다는)에서 엉터리 비난(독자적인 킬러의 소행이라는)을 거쳐 이제는 여우가 자신이 암탉에게 한 짓을 확실히 조사하겠다고 주장한다"고 비꼬았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도 사우디 정부 조사의 공정성이 의심된다며 "유엔이 주도하는 공정하고 독립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firstcirc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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