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환자가 딸 살해"…심신미약 감경 놓고 논란 고조
경찰, 홧김에 여자친구 살해한 피의자 구속…피의자, 심신미약 주장
PC방 살인사건 논란 이어 "심신미약 처벌 강화해야" 국민청원 쇄도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사물을 변별하는 능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강력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범인의 형량을 낮춰주는 '심신미약 감경'을 두고 부정적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서울 강서구 PC 아르바이트생 살해범이 경찰 조사에서 우울증을 앓는다고 진술한 데 이어 서울 금천구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한 범인이 조현병을 앓고 있다고 하는 등 이달 들어 강력범이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논란이 커졌다.
지난 18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 판에는 "심신미약 피의자에 의해 죽게 된 우리 딸 억울하지 않게 해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금천구 살해사건 피해자의 아버지가 올린 글이었다.
이 글은 "우리 딸은 남자친구에 의해 목 졸림으로 숨졌다"며 "가해자는 정상적으로 살 수 있는 정도인데 사건이 발생하니 조현병이라는 병명으로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19일 해당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 금천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여자친구를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A씨를 구속해 수사하고 있다.
A씨는 지난 12일 오후 서울 금천구에 있는 여자친구 B씨의 자취방에서 B씨를 목 졸라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술을 마시던 도중 두 사람 사이에 말다툼이 있었고 A씨는 홧김에 B씨의 목을 조른 것으로 조사됐다.
논란은 현행범 체포된 A씨가 심신미약을 주장하면서 불거졌다. A씨는 '조현병 탓에 군대에서도 3개월 만에 의병제대를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경찰은 A씨를 공주의 치료감호소로 보내 정신감정을 받도록 했다.
감정유치란 피의자의 정신 상태가 어떠한지 판단하기 위해 치료감호소에서 일정 기간 의사나 전문가의 감정을 받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피해자의 아버지가 올린 청원 글에는 19일 오후 6시 45분 현재 4만4천 명이 넘는 인원이 청원 서명을 했다. 이 밖에도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심신미약자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청원 글이 쇄도하고 있다.
이처럼 여론이 들끓는 것은 흉악범죄를 저지른 후 심신미약을 주장해 감형을 받는 사례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로는 8세 여아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조두순이 꼽힌다. 조두순은 2008년 12월 경기 안산의 한 교회 앞에서 초등학생을 납치해 성폭행하고 다치게 한 혐의로 복역 중이다.
당시 조두순은 8세 여아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줬음에도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감경으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형법 10조는 '심신 장애자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정도에 따라 형을 감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정신병력이 범행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면 형량은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뿐, 심신미약을 이유로 범죄사실을 덮어줄 수는 없다는 게 수사기관의 설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단계에서는 정신감정을 통해 실제로 정신 상태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전문가의 확인을 받아 수사기록에 첨부하고 검찰에 송치하게 된다"며 "심신미약 주장을 받아들여 형을 면하게 해주거나 감경해주는 것은 법원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서담'의 김의지 변호사는 "피의자가 심신미약을 주장하면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동안 피의자 어떻게 살아왔는지, 왜 범죄를 저질렀는지 조사한다"며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했던 정도라면 심신미약을 인정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심신미약으로 감경을 받는 데는 판사의 재량이 크게 작용한다"면서도 "강력범죄가 아니더라도 형량을 낮출 목적으로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아서 재판부도 심신미약 사유를 보수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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