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강서 PC방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진 과제
(서울=연합뉴스) 지난 14일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에 있는 한 PC방에서 발생한 아르바이트생 피살 사건이 우리 사회의 잠복 이슈를 건드린 격이다. 해당 사건은 PC방을 찾은 손님 김 모(29) 씨가 스무살 아르바이트생을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사건이다. 김 씨는 곧바로 경찰에 체포됐지만, 사회적 관심은 덜한 편이었다. 하지만 김씨가 경찰에서 10년 넘게 우울증을 앓아왔다고 진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이 끓어올랐다.
피의자 김 씨의 우울증 병력이 알려진 뒤인 지난 1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알바생의 안타까운 죽음을 전하는 글이 올랐다. 청원자는 "언제까지 우울증, 정신질환, 심신미약 이런 단어들로 처벌이 약해져야 합니까"라며 정신질환 병력자들의 범죄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촉구했다. 해당 청원은 게시된 지 하루 만에 청와대 답변기준(20만명)을 훌쩍 넘긴 데 이어 19일 오전에는 5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반향이 뜨거웠다.
이 사건이 이처럼 사회적 관심을 끌게 된 데는 피해자가 우리 사회문제 중 하나인 '청년실업'의 고통을 몸으로 겪는 스무살 청년이란 점이 작용했다고 생각된다.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간 김 씨의 응급치료를 맡았던 의사의 반응도 여론을 움직였다. 이대목동병원에서 김 씨의 응급치료에 나섰던 의사 남궁인 씨는 블로그에 "참담한 죽음이었다. 인간이 인간에게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고 심경을 전했다. '의사작가'로 알려진 남궁 씨는 "피의자가 우울증에 걸렸던 것은 그의 책임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우울증은 그에게 칼을 쥐여주지 않았다"고 목청을 높였다.
PC방 알바생의 죽음에 우리 사회가 이렇게 분노하는 것은 흉악범죄를 저지르고도 정신질환이나 심신미약을 이유로 선처되거나 감형을 받는 사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행 형법에는 심신 장애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 결정 능력이 없는 사람을 처벌하지 않거나 감형해야 한다고 돼 있다. 2008년 8살짜리 아동을 성폭행한 '나영이 사건'의 범인 조두순은 만취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라는 이유로 징역 15년에서 12년으로 감형된 바 있다. '강남역 살인사건' '인천 초등생 살해사건' 등의 피의자들도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을 요구했다. 사회적 분노를 유발하고도 선처나 감형을 요구하는 그들을 통해 시민들은 법과 현실 간의 괴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정신질환자나 심신미약자의 범죄가 한 가정을 파탄 낼 수도 있다. 중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무조건 면책할 수 없고, 정상인과 똑같이 처벌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사회적 논란을 줄이려면 선처나 감형은 과학적이고 엄격한 진단을 거친 의학적 사유를 토대로 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심신미약자 범죄와 관련된 법과 제도를 현실에 맞게 재정비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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