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을 기억하겠습니다'…히말라야 원정대 눈물 속 마지막 길
서울시립대서 합동 영결식…"산악계의 마지막 보루 무너졌다" 침통
(서울=연합뉴스) 최송아 기자 =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양희은 '한계령' 중)
눈부신 가을 하늘과 선명하게 물든 단풍잎, 은행잎으로 뒤덮인 캠퍼스에 '바람처럼 살다간' 산(山) 사나이들을 떠나보내는 슬픔이 깔렸다.
19일 오후 서울시립대 대강당에서는 히말라야 다울라기리 산군(山群) 구르자히말 남벽 직등 신루트 개척에 나섰다가 참변으로 세상을 떠난 김창호 대장 등 원정대원 5명의 합동 영결식이 엄수됐다.
유족과 산악 관계자, 일반 추모객 등 300여명이 자리해 김 대장, 유영직(장비 담당), 이재훈(식량·의료 담당), 임일진(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정준모(한국산악회 이사)씨와 작별을 고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이재오 자유한국당 선임고문 등도 참석했다.
시작 약 10분 전 가수 양희은의 곡 '한계령'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유족들의 손에 들려 들어오는 사진 속 5명의 대원은 모두 미소짓고 있었다.
대원들의 약력이 소개된 뒤 상영된 추모 영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9일 촬영된 영상 속 그들은 좁은 텐트에 쭈그리고 앉은 채 조촐한 식사 중이었지만, 미소를 머금은 채였다.
이어진 조사에서 정기범 한국산악회 회장은 "산악계의 마지막 보루가 허망하게 무너졌다. 김창호 대장은 늘 '우리는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큰 산으로 떠날 때마다 산책과 사색을 하며 자신이 오를 그 산을 생각하고 고민했다"며 애도했다.
김덕진 대한산악연맹 비상대책위원장은 애도사에서 "그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하얀 산의 품속에 안겼다. 이들은 산에 대한 불꽃 같은 열정과 의리로 똘똘 뭉친 산악계의 보배이자 희망이었다. 그 뜻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훈 한국대학산악연맹 회장(서울시립대 교수)은 추도사에서 다섯 명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들리십니까, 아름다운 당신들을 편히 보내고자 하는 우리들의 기도 소리를…"이라며 흐느꼈다.
8천m 14좌에 완등한 산악인 김재수 씨는 고인들이 평소 좋아했다는 프랑스 산악인 로제 뒤플라의 시 '그 어느 날'을 낭독했다.
"그 어느 날, 내가 산에서 죽게 되면 자일로 맺어진 오랜 친구인 자네에게 이 유언을 남겨두겠네/ 우리 어머니를 만나서 전해주게/ 내가 행복하게 죽어갔다고/ 내 마음은 언제나 어머니 곁에 있었기에 조금도 외롭지 않았다고…(후략)"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오른 산악인 김영미씨는 편지로 고인들과의 추억을 그렸다.
"창호형, 정상 갈 때 신으시라고 드린 양말은 다들 발에 잘 맞는지 모르겠어요. 뭘 그런 걸 가지고 고맙다고 해요…. 영직이 형, 오시면 설악산 등반 가자고 하셨잖아요. 생삼겹살 집 단골이시라면서요. 울산암 등반하고 내려와 거기서 다 함께 한잔하시죠…"
울음 섞인 목소리로 하늘로 보낸 그의 메시지에 모두가 눈물을 훔쳤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이인정 아시아산악연맹 회장이 인사말을 하러 단상에 올라갔을 땐 유족 중 한 명이 "산악인이 산에서 죽었는데 왜 산악인장(葬)을 치르지 않느냐"고 항의해 주변의 제지를 받는 일도 있었다.
이 회장은 "이것은 산악인장이다. 전국의 산악인 모두가 함께한 대한민국 산악장"이라고 밝힌 뒤 인사말을 전했다.
산악인 3명으로 구성된 '알펜 트리오'는 추모의 노래로, 다른 참석자들도 헌화와 분향으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공식 순서가 모두 끝난 뒤에도 많은 이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 채 객석에서 눈물을 흘리거나 사진으로 대원들의 마지막 모습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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