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교황 방북은 한반도 평화와 北 변화의 촉매제
(서울=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방북 초청 의사에 대해 "공식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고, 나는 갈 수 있다"고 화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통해 전달받은 초청 뜻을 접수하되, 북한이 공식 초청장을 보내오는 외교적 절차를 밟는다면 방북하겠다는 사실상 수락 의사를 밝힌 것으로 사상 첫 교황 방북에 기대감을 높였다. 방북 성사까지는 교황청과 북한 간의 사전 외교적인 논의 절차가 있어야 하고, 북한 내 종교의 자유 문제나 인권 이슈 등이 검토 사항이 될 수 있지만, 결국 교황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교황 방북은 김일성 김정일 시대에도 추진된 바 있지만, 체제 변화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 북한의 소극적 태도로 무산됐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이 선대와는 다른 리더십으로 비핵화의 길을 천명했고, 경제 발전을 위한 개혁·개방의 의지도 피력하는 터라 과거와는 환경이 다르다. 김 위원장이 교황 방북을 초청한 데는 국내적으로는 체제 선전, 국외적으로는 정상국가 이미지 변신에 도움을 받을 것이라는 계산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 교황이 평양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북한 주민들과 직접 접촉함으로 인한 변화의 충격이 있더라도 이를 감수하겠다는 단안도 내렸을 것이다. 교황 방북이 북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복합적이겠지만, 북한이 고립국가에서 탈피해서 국제사회로 나오는 변화의 촉매제가 될 것은 틀림없다. 냉전 시대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이 공산주의 폴란드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 전례도 있다.
무엇보다도 '평화의 사도'라 불리는 교황의 방북은 비핵화, 그리고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통해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이루려는 역사적 흐름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추동력이 될 것이다. 교황은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때부터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깊은 관심을 표명하며 대화 노력이 열매 맺기를 기원해왔다. 방북은 그 정점으로 평가된다. 전 세계 12억 명 이상의 신자를 지닌 가톨릭 공동체의 수장이면서 종교의 벽을 뛰어넘어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지도자의 방북은 비핵화·평화 협상의 국제적 지지를 확산하고 흐름을 되돌릴 수 없도록 하는 버팀목도 될 것이다.
교황은 18일 문 대통령을 면담한 자리에서 "한국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노력을 강력 지지한다"고 밝히고, "평화 노력을 멈추거나 두려워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당부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교황의 최고 수위 응원 메시지다. 교황청에서 울려 퍼진 평화의 기도가 현실 속에서 실현되기를 기원한다. 그 도정에 교황의 방북이 매개되기를 바란다. 교황 방북 시기와 관련, 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내년 봄 가능성을 얘기한 바 있고, 내년 일본 방문 시기에 북한도 함께 들리는 일정도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교황 방북이 성사될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한반도 평화 흐름을 북미 협상과 남북 관계의 진전을 통해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더욱 절실해졌다. 현실의 난제를 냉정하게 풀어가는 것은 정치 지도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대북 제재 완화의 시기와 조건을 둘러싼 북미 간 이견, 남북 관계 진전 속도를 둘러싼 한미 간 온도 차 등이 표출되는 것은 협상의 복합성을 고려할 때 수반되는 과정이다. 문제는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이나 '평양 공동선언'에 담긴 상호 신뢰 구축과 새로운 관계 수립을 위한 이행 노력을 서로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신뢰의 끈을 놓지 말되 행동으로 상대의 신뢰를 제고하는 노력이 더욱 중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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