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두 페소아 시가집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입력 2018-10-18 11:24
수정 2018-10-18 14:43
페르난두 페소아 시가집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시선집 잇따라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포르투갈의 천재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1888∼1935) 시선집이 국내에서 잇따라 출간돼 주목받는다.

최근 민음사에서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 두 권이 함께 나온 데 이어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 시리즈로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페르난두 페소아 시가집'이 출간됐다.

페소아는 70∼120개에 달하는 다른 이름을 쓴 것으로 유명한데, 민음사 시선집은 그의 가장 대표적인 세 가지 이름 알베르투 카에이루, 리카르두 레이스, 알바루 드 캄푸스로 쓴 대표작을 골라 실은 것이다.

이번에 나온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는 본명으로 쓴 작품 81편을 엮은 시선집이다. 그가 사후 남긴 트렁크에는 유고 3만여장이 들어있었다고 하는데, 그 중 페소아가 생전에 출간하지는 못했으나 직접 제목을 정하고 출판을 계획한 '시가집'(Cancioneiro)에 관한 기록이 있다. 그동안 한국에 꾸준히 페소아를 소개한 작가 김한민은 이 '시가집' 기록을 바탕으로 대표작들을 추려 번역하고, 표지 그림도 직접 그렸다.



본명으로 남긴 작품들에서도 페소아는 그답게, 어느 한 분야에 닻을 내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이동하고 정처 없이 부유하는 내면을 보여준다. 존재와 부재, 고정된 정체성에 대한 회의 등 그가 줄기차게 천착한 주제들 외에도, 민족과 역사, 유년의 기억, 사랑과 성(性), 기존 종교에 대한 회의와 대안적 종교에 대한 관심 등을 다뤘다. 새로운 문체와 형식 실험도 엿볼 수 있다.

완벽한 포르투갈어 표현의 전형이 되는 '"내 마을의 종소리"', 페소아가 창시한 문학사조의 전범이 되는 '습지들', 페소아 스스로 "더 진정으로 페르난두 페소아인 것, 더 내밀하게 페르난두 페소아인 것"으로 평가한 '기울어진 비' 등이 실렸다. 시인의 유년 시절 아프리카 체류 경험이 직접 드러나는 유일한 시 '리마의 저녁', 본명과 이명을 막론한 페소아의 모든 화두가 망라된 '"푸름, 푸름, 푸름"'과 '마지막 주술', '기독교 장미십자회의 무덤에서', '신(神)-너머' 등도 만난다.

"푸름, 푸름, 푸름, 바닷가의 하얀/해변에서 바다가 잠잠해지네/오로지 밝고 오래된 이 소리만/이 시각의 명징한 침묵 속에 속닥거리네.//나머지-고요, 그리고 가는 수평선에서/짙은 안개 혹은 아지랑이 혹은 환상/하늘과 물인 저 넓은 푸르름 속에/하나의 부질없는 간극과도 같은.//내 안에서 평정을 찾네, 보는, 보는, 보는 데서/오는 이 불안함, 오래된 아픔/살아 있음을 느낌에서 오는,/욕망할 수 없음에서 오는,/우리 친구 영혼을 가지지 못함에서 오는." ('"푸름, 푸름, 푸름"' 부분)

사랑과 성을 다룬 '"사랑이야말로 본질적인 것"', '"존재만으로도 놀랍다"' 등은 시인의 사랑관 및 성적 정체성에 관한 흥미로운 전기적 자료로 연구되는 작품들이어서 함께 엮었다고 한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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