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소비자 주권시대] ④ 자리잡는 숙의 민주주의 공론화(끝)

입력 2018-10-21 09:55
수정 2018-10-21 09:57
[행정소비자 주권시대] ④ 자리잡는 숙의 민주주의 공론화(끝)

부산·제주서 지역 현안 공론화로 첫 결정…대전서는 논란도

전문가 "검증할 수 있고, 토론 기간 충분히 보장"

(전국종합=연합뉴스) 행정을 둘러싸고 주민 찬반이 첨예한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공론화 제도'가 주목받고 있다.

공론화는 지역·성별·나이 등을 적정비율로 반영해 뽑힌 시민 대표가 토론으로 특정 현안에 대해 숙의 과정을 거쳐 의견을 내는 방식을 말한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10월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여부를 공론화 과정에 맡겨 해결한 것을 시작으로 지역 주요 현안도 공론화를 통해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진다.



부산시는 중앙버스전용차로제(BRT) 사업 재개 여부를 두고 지역 첫 공론화 위원회를 열어 이달 중순 공사 재개를 결정했다.

지난 8월 시민 공론화 위원회를 설립한 뒤 2천585명의 의견을 묻고, 시민 대표 141명이 1박 2일간 학습을 통해 도출한 토론 결과와 전문가 의견을 취합해 결론을 내렸다.

부산시는 "성숙한 토의문화와 결정 과정으로 시민참여단 81.6%가 결과에 만족감을 나타냈다"면서 "1박 2일 학습 과정에서 시민 의견이 수렴되고, 반대 의견을 토대로 개선점을 만들어내며 성숙한 민주주의를 보였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 허가 여부를 두고 이를 공론화 과정에 부쳐 이달 초 시민들로부터 '개설 불허'의견을 도출했다.

공론화 위원회 구성 당시는 분열됐던 의견이 토론과 전문가 조언을 거치면서 '개설 반대'로 과반 넘는 의견을 모였다.

제주도는 "참석자 83.9%가 공론화 과정이 공정했다고 답했고, 76.7%가 최종 결과에 존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면서 "도민들의 행정 이해도를 높아졌다"고 말했다.

광주시도 재정적자 등을 문제로 찬반 논란이 있는 도시철도 2호선 문제를 시민 공론화를 통해 해결하기로 하고 절차에 돌입했다.

대구시와 강원도도 신청사 설립, 운영방안과 관련해 공론화로 결정하기로 했다.



기초단체도 공론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경남 창원시는 공론화 위원회 설치를 선거공약으로 낸 허성무 시장 취임 후 공론화 위원회를 아예 상설기구로 신설했다.

경남 김해시도 지역 주민이 반대하는 장유소각장 문제를 공론화 방법 가운데 하나인 시민 원탁 토론회에서 여론조사를 한 후 시정에 반영하기로 했다.

하지만 공론화가 만능이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시민참여단 모집 방식과 '대표성'을 두고 갈등이 불거지며 공론화 과정 자체가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다.

대전시는 월평공원 민간특례사업 방향을 결정하기 위해 이달 7일 시민참여단 200명을 모집했지만, 시민참여단 모집 방식에 논란이 불거지며 불참자가 잇따라 '반쪽 공론화'로 절차가 진행됐다.

광주에서는 공론화 위원회 구성 때 시의회가 참가해야 할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공론화가 민감한 사안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장이 정책 결정을 회피하거나 미루려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 공론화 과정을 거치면서 대립이 더 첨예해질 수 있고 근본적인 해결책 제시보다는 찬반 의견을 모두 반영한 미봉책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지역민의 특성이나 의제에 따라 적합한 여론 수렴 과정과 방법은 다를 수 있어 제도를 보완하고 고민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면서 "공론화가 그전에는 한 번도 진행해보지 않은 방식이어서 미숙함이 나올 수 있지만 이를 보완한다면 좋은 수단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정수 이화여자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도 "공론화 과정이 기존의 공청회처럼 의사결정을 해놓고 한 과정처럼 넘기는 '한국형 공론화'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있다"면서 "시민 대표 모집 과정을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바꾸고 비용과 대안 제시를 위한 건전한 토론, 1박 2일의 집중 토론을 여러 차례 해 좀 더 시간을 두고 고민할 수 있는 방식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rea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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