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의혹' 곤경 처한 사우디, 美제재 지레 '과잉 방어'

입력 2018-10-15 17:35
'암살 의혹' 곤경 처한 사우디, 美제재 지레 '과잉 방어'

"미국 제재 부과시 이란과 연대" 주장까지 나와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왕실에 비판적이던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를 암살했다는 의혹을 받는 사우디 정부가 이를 적극적으로 부인하면서도 그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카슈끄지의 실종사건의 여러 악영향 가운데 사우디 정부는 미국의 경제 제재에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미국 정부가 제재 카드를 꺼내 들지도 않았는데 사우디는 지레 이를 거론하면서 '과잉 방어 자세'를 취했다.

사우디 외무부는 14일(현지시간) 낸 성명에서 "사우디의 경제력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며 필수적이다"라며 "경제 제재, 정치적 압력 등 사우디에 대한 어떤 협박도 전적으로 거부한다"고 경고했다.

아직 카슈끄지가 사우디 정부에 기획 암살됐다는 결과가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최악의 시나리오인 경제 제재를 먼저 언급하는 '선공'을 시도한 셈이다.

그러나 이 성명에서는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사우디의 강력한 항변과 함께 일방적으로 불리한 국제 여론 지형과 그 후폭풍을 사우디도 심각하게 우려하는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사우디의 이런 복잡한 속내는 이 성명 직후 주미 사우디 대사관이 낸 성명에서 읽힌다.

주미 사우디 대사관은 14일 "본국 외무부의 성명을 명확히 부연한다"며 "미 행정부가 수사 중인 사건의 진상을 넘겨짚지 않은 점에 대해 감사를 전한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사우디에선 미국의 제재를 염두에 두고 이에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사우디 국영 알아라비야 방송과 일간 아샤르크 알아우사트는 14일 홈페이지에 '미국이 사우디를 제재한다면 자신의 등에 칼을 꼽는 셈이다'라는 제목의 기명 칼럼을 게재해 화제가 됐다.

사우디의 유력 언론인 투르키 알다킬은 이 칼럼에서 "사우디 핵심부에서는 미국의 제재에 대비한 30가지 방책이 논의된다고 한다"며 "제재가 실제 부과된다면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 200달러 이상으로 폭등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 등 서방의 대(對)사우디 제재는 모든 중동 국가와 이슬람권을 이란의 무기고로 몰아넣게 될 것"이라며 "지금 사우디-미국 관계보다 (이란과) 더 밀접해지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어 "팔레스타인 하마스, 레바논 헤즈볼라가 사우디의 적에서 친구가 되고 종국엔 이란과 화해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며 "사우디는 미국 무기를 사지 않고 그 빈자리를 중국과 러시아가 메우면서 러시아의 사우디 주둔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들 언론은 이 칼럼이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점을 강조했으나, 사우디의 국영 언론이 전략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극단적인 논조의 칼럼을 싣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실종 사건을 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면서도 사우디에 대한 제재에는 선을 그었다. 다만 미 의회 일각에서 인권 관련 법을 근거로 사우디에 대한 무기 수출을 중단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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