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 경찰, '댓글공작' 위법 소지 인식하고도 강행 정황

입력 2018-10-15 14:16
수정 2018-10-15 17:52
MB정부 경찰, '댓글공작' 위법 소지 인식하고도 강행 정황

경찰관서 공용망 대신 사설망 깔아 사용…무선모뎀으로 IP 은폐 흔적

여론대응 담당 비공식 조직 구성…기동대까지 SNS 담당 지정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이명박 정부 시절 경찰이 정부와 경찰에 우호적 여론 조성을 위해 댓글공작을 진행하면서 위법성 소지를 상당 부분 인식했다고 볼 정황이 드러났다.

15일 경찰청 특별수사단의 수사 결과를 보면, 당시 댓글작업에 동원된 경찰관들은 경찰관 신분을 감추려고 가명 아이디나 가족·지인 명의 차명 아이디를 사용했다.

댓글·트위터 글을 작성한 인터넷 프로토콜(IP) 추적을 피하고자 외국 IP로 우회 접속하거나, 경찰관서에서 쓰는 공용 인터넷망 대신 사설 인터넷망을 설치해 사용하기도 했다.

당시 경찰이 무선 모뎀을 이용해 IP 추적을 피하려 한 사실도 확인됐다. 주로 노트북PC에 꽂아 사용하는 무선 모뎀은 접속할 때마다 IP 주소가 바뀐다.

홍보부서처럼 기존의 공식 온라인 대응팀을 동원한 경우도 있지만, 서울경찰청 정보관리부의 SPOL(Seoul Police Opinion Leader)과 같이 비공식 조직이 구성된 사례도 드러났다.

심지어 집회·시위 관리업무를 수행하는 경찰관 기동대에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담당을 둬 인터넷 여론에 대응하도록 한 경우도 있었다.

각종 현안 관련 여론대응 지시는 경찰 내부망으로 하달됐고, 직원들에게 동시에 단체문자를 발송하는 시스템도 사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단은 댓글공작에 이같은 수단이 동원된 것은 경찰이 여론 형성에 개입한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위법성 논란이 생길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했다.

실제 수사단이 압수한 일부 보고문건에서는 비공식 조직 운영과 관련, "공식적으로 운영하면 여론조작 비난 등 우려가 있다"는 취지의 언급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댓글공작을 수행한 당사자들도 문제 소지를 이미 인식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다만 지휘부 차원에서 명시적으로 '댓글을 게시하라'고 지시한 공문은 없었다고 수사단은 밝혔다. 수사단 관계자는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문제 소지에 관한 인식을 어느 정도 한 상태에서 명시적으로 지시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부 지시로 댓글공작을 수행한 실무자들 가운데는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라고 생각하며 자괴감을 느끼거나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 이들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비판 성향 누리꾼으로 분류된 이른바 '블랙펜'을 상대로 영장 없이 이메일과 IP 등을 불법 감청한 민모 경정도 위법성을 인식했을 것으로 수사단은 보고 있다.

민 경정은 피의자 조사에서 "평생 보안수사에 몸담았으므로 보안사범 검거를 숙명으로 여겼다. 그 정도까지는 허용되는 것으로 알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수사단은 보안수사 분야에 오래 재직한 민 경정의 경력 등으로 미뤄 그가 영장 없는 감청이 불법임을 몰랐을 리 없다는 입장이다.

수사단은 댓글공작과 블랙펜 불법감청에 관여한 혐의로 조현오 전 경찰청장(구속) 등 고위직을 포함한 전·현직 경찰관과 감청 프로그램 업체 관계자 2명 등 12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고, 추가로 혐의가 포착된 4명을 수사 중이다.

MB정부 경찰, '댓글공작' 3만7천건…정부 우호여론 만들려 / 연합뉴스 (Yonha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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