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협상 타결임박] ④가시권 들어온 英 탈퇴…EU 위기(끝)
'EU 인구 13%, GDP 15% 이탈…방위능력 약화도 불가피
'反 EU 정치세력' 급부상…내년 유럽의회 선거에 '돌풍' 예고
EU 개혁·투명성 제고 과제…'안보 홀로서기'로 결속 도모
(브뤼셀=연합뉴스) 김병수 특파원 =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Brexit·브렉시트)가 14일로 168일 남겨 놓게 되면서 영국이 빠진 EU의 미래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로써 냉전시대에 국제 질서를 쥐락펴락했던 미국과 러시아, 국제무대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중국에 맞서 '하나된 유럽제국'을 꿈꾸며 지난 60여년간 내달려온 EU의 노력이 커다른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지난 1957년 3월 25일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6개국이 체결한 유럽경제공동체(EEC) 설립을 위한 조약을 기반해 출발한 뒤 EU는 그동안 지속해서 몸집을 불려와 28개국 연합체로 성장했다.
또 그동안 경제공동체를 넘어서 정치·외교는 물론 국방 공동체로서 위상을 굳히기 위한 포부를 키워왔으나 사상 첫 회원국 탈퇴라는 예상치 못한 역사적 퇴행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교착상태에 빠졌던 브렉시트 협상의 타결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양측은 '노 딜 브렉시트'(영국이 EU와 아무런 합의없이 EU를 자동 탈퇴하는 상황)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가능성이 커졌으나 영국의 탈퇴 자체가 EU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평가된다.
영국은 작년 기준으로 EU 인구의 12.9%, EU 국내총생산(GDP)의 15.2%를 차지하고 있다.
내년 3월 30일 영국이 EU를 탈퇴하게 되면 EU의 인구와 경제력은 영국의 EU내 입지만큼 줄어드는 게 불가피하다.
더욱이 영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고, 핵을 보유한 국가라는 점을 고려하면 영국이 빠진 EU가 실감하는 외교력과 국방력의 손실은 실제 수치로 나타나는 것보다 훨씬 더 치명적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브렉시트가 EU에 남긴 가장 큰 타격은 '반(反) EU 정서의 확산'이라는 '유령'이다.
회원국 내부에서 EU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EU 탈퇴를 주장하는 세력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면서 EU의 원심력이 커지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작년 3월 네덜란드 총선에서는 반(反)EU를 내세운 극우정당 자유당(PVV)이 제2당으로 올라섰고, 5월 프랑스 대선에선 국민전선(현재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 후보가 1차 투표에서 2위를 차지하며 결선투표에 처음으로 진출했다.
이어 작년 9월 독일 총선에선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12.6%의 지지를 얻으며 제3당에 올랐고, 10월 오스트리아 총선에서는 극우 자유당이 제바스티안 쿠르츠 총리가 이끄는 우파 국민당과 연정을 구성해 주류 정치무대에 진입했다.
올해 4월 헝가리 총선에선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반난민·반EU를 무기로 내세워 4선에 성공했고, 지난 6월 이탈리아에서는 극우정당 '동맹'이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과 연정을 구성해 정권을 잡았다.
지난달 스웨덴 총선에서도 반EU를 표방하는 극우정당 스웨덴민주당이 제3당에 오르며 캐스팅보트로 부상했다.
이처럼 EU 곳곳에서 반EU를 내세우는 극우정당이 기반을 넓혀가면서 내년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반EU세력'의 돌풍을 예고하고 있어 EU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EU 내부에선 프렉시트(Frexit, 프랑스의 EU탈퇴), 이탈렉시트(Italext, 이탈리아의 EU 탈퇴) 등 제2, 제3의 브렉시트가 현실화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그동안 EU의 가장 든든한 우방이었던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브렉시트 결정을 높게 평가하면서 추가 이탈 가능성을 예언하며 유럽내 반EU 정서를 자극하기도 했다.
브렉시트에 화들짝 놀란 EU는 뒤늦게 원심력을 차단하고 구심력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에 힘을 쏟고 있다.
EU 내부에선 회원국 국민에게 '하나된 유럽'이 주는 혜택을 피부로 느끼도록 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EU는 지난 2017년 6월 15일 다른 EU 회원국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할 때 부과해온 해외로밍요금제를 폐지함으로써 EU의 사회적 통합을 한 단계 높였다.
또 18세 이상 청년들에게는 다른 회원국을 방문해 배우고 경험하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여행 지원 프로그램도 마련돼 올해 1만5천명에게 혜택을 줬으며 2021년부터 이를 대폭 늘리도록 예산을 배정했다.
EU의 효율성과 결속력을 높이기 위한 개혁방안도 다각도로 모색되고 있다.
EU와, EU 내에서 유로화를 사용하는 19개 회원국인 유로존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EU 경제재무장관직을 신설하고, 회원국 구제금융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유럽안정화기구(ESM)를 '유럽판 국제통화기금'(IMF)인 '유럽통화기금'(EFM)으로 확대·발전시키는 방안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동안 영국의 반대에 부딪혀 추진하지 못했던 국방공동체로 발전하기 위한 노력도 속도를 내고 있다.
EU는 회원국 간 안보·국방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항구적 안보협력체제(PESCO) 협정'을 체결, 유럽 의무사령부 창설 등 17개 과제를 공동 추진하며 유럽군(軍) 창설을 실현하기 위한 정지작업에 착수했다.
EU의 이 같은 시도는 지금까지 안보문제를 미국 주축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의존해온 것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하기 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근본적으로 EU를 개혁하고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싱크탱크 '프렌즈 오브 유럽'(Friends of Europe)은 지난달 EU 회원국 국민 1만96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9%는 EU가 자신들의 삶과는 관련이 없다고 인식하고 있었다며 "변화와 개혁이 없으면 EU는 다수의 회원국 국민에게 관련 없는 기구로 남게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영국 탈퇴의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EU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빈자리'는 적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EU가 영국의 탈퇴조건에 초점을 맞춘 브렉시트협상과 더불어 무역·안보문제 등 미래관계에 대한 협상에 중점을 두는 이유도 이를 반영한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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