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영화, 새 궤도에 올리다…달에 간 사나이 '퍼스트맨'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할리우드식 뻔한 영웅 서사가 아니다.
달 표면에 있는 '고요의 바다'에 인류가 첫발을 내딛기까지 한 인간의 고뇌와 많은 이의 희생이 한편의 대서사시처럼 펼쳐진다.
영화 '퍼스트맨'은 미국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1930∼2012)이 제트기 조종사에서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를 타고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에 착륙하기까지 과정을 연대기 순으로 다룬다.
암스트롱이 미 항공우주국(NASA)에 들어가 제미니8호 선장으로 아제나 위성과 최초로 도킹에 성공한 이야기나 그간 알려지지 않은 그의 개인사도 볼 수 있다.
기존에 흔히 보던 우주 영화들과는 궤가 다르다. 시야가 탁 트인 우주 공간보다는 폐쇄된 우주선 조종석에 앉은 암스트롱 얼굴이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자주 잡힌다. 긴장된 눈빛만으로도 그가 겪었을 심적 부담과 긴장감, 고통은 고스란히 전해진다.
영화는 관람이라기보다 체험에 가까운 비주얼을 구현한다. 시작부터 압도적이다. 제트기가 굉음을 내뿜으며 하늘로 솟아오를 때 실제 탑승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 계기판조차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시야가 심하게 흔들리고 지상에서부터 오는 교신 소리만 들릴 때, 저절로 숨이 턱턱 막혀온다. 극중 암스트롱이 탄 우주선이 아제나 위성과 도킹한 뒤 고장 나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는 장면에서는 어지럼증이 생길 정도다.
지구로 다시 시선이 옮겨가면, 영화는 암스트롱의 삶의 여정과 인간적인 면모를 담담하게 따라간다. 그는 미국의 영웅이기 전에 아내와 아이들을 둔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어린 딸을 병으로 잃은 뒤 그 슬픔에서 오랫동안 헤어나지 못한다. 그와 함께한 동료들도 각종 사고로 그의 곁을 하나둘씩 떠난다. 많은 죽음을 접하고, 그 또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늘 아슬아슬하게 서 있기에 종종 날 선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가 하는 일 역시 모든 사람의 지지를 받는 것은 아니었다. 미국은 당시 소련과 체제 경쟁을 하느라 막대한 돈을 우주개발에 쏟아부었고, 많은 우주인이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달에 가는 것이 과연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라며 사회적 반대 여론이 높았고, 흑인들은 "우리는 먹고살기도 어려운데, 백인들은 달에 가려 하네"라며 조롱 섞인 노래를 불렀다.
영화는 그런 사회 분위기와 주변인들의 잇따른 죽음 속에서 암스트롱이 겪었을 내적 갈등을 조망한다. 암스트롱은 그러나 자신의 어깨 위에 놓인 무거운 짐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자기 길을 뚜벅뚜벅 간다.
하이라이트는 달 착륙 장면이다. 여러 시행착오와 많은 희생 끝에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내디딜 때 스크린에는 한동안 적막이 흐른다. 마치 무중력 상태의 달 표면 위에 있는 느낌을 준다. 아이맥스로 촬영해 스크린을 꽉 채운 광대한 우주의 모습과 달 표면의 황홀한 광경은 관객을 역사의 현장 속으로 끌어들인다. 달에서 바라본 푸른 빛을 띤 지구가 마치 초승달처럼 보이는 광경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암스트롱이 달 위에 직접 성조기를 꽂는 장면은 없다. 이미 꽂힌 성조기가 멀리서 배경으로 잡힐 뿐이다. 암스트롱이 첫 발을 내딛고 그 유명한 소감을 말할 때는 객석도 숙연해진다. "이것은 한 인간에 있어서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 전체에 있어서는 위대한 도약이다".
영화는 영웅적인 묘사를 끝내 거부한다. 우주 영화 결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헬멧을 들고 위풍당당하게 걸어 나오는 주인공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위플래쉬'(2015), '라라랜드'(2016)의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작은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으면서 차별화된 작품으로 천재성을 다시 한번 입증한다. 뮤지컬 영화를 만든 감독답게 적재적소에 흘러나오는 음악은 객석을 유영하며 감정을 천천히 끌어올린다.
배우들의 명연기도 놀랍다. 닐 암스트롱 역을 맡은 '라라랜드' 라이언 고즐링은 절제되면서도 복잡한 내면을 능숙하게 연기했다. 그의 눈빛에는 찰나에도 다양한 감정이 스쳐 지나간다. 닐 암스트롱 아내로, 그가 꿈을 펼칠 수 있게 옆에서 지켜보는 재닛 암스트롱 역의 클레어 포이 역시 탄탄한 연기를 보여준다. 겉으로는 의연하지만, 귀환이 보장되지 않는 우주로 남편을 떠나보낼 때마다 느끼는 상실감이가슴 저릿하게 전해진다. 10월 18일 개봉.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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