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트럼프 맞서는 '외교의 스타'…자국내에선 '정치 위기'
자유무역 강력 옹호, 중동평화 적극 관여…美 리더십 공백 메우는 피스메이커
국정 지지율 1년반 만에 20% 중후반으로 추락…각료 이탈 속 최악의 정치위기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오는 15일(현지시간) 파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외국에서와 국내에서의 평판이 극명히 엇갈리고 있다.
외교무대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생긴 미국의 '리더십 공백'을 메우는 스타 정치인으로 평가받지만, 국내에서는 각종 스캔들과 주요 각료들의 이탈 속에 지지율이 20% 중반대로 주저앉으며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한·불 정상은 작년 5월 거의 같은 시기에 집권해 곧잘 비교 대상에 오르곤 한다. 다만, 프랑스와 한국은 처한 입장과 역사적 경로가 확연히 다르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자유주의 질서의 계승자 자임…트럼프 집권 후 생긴 美 리더십 공백 메워
마크롱은 전후 자유주의 질서를 주도한 미국과 서유럽을 아우르는 국제사회 '주류' 무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 이후 혜성처럼 나타난 대항마로 평가된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이 전후(戰後) 주도적으로 구축한 자유무역과 개방경제의 굳건한 기조를 스스로 흔들어놓고는 주요국들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등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는 경향이 강하다.
아울러 미국은 국제사회 공동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기후변화와 세계평화라는 과제에서 전통적인 자국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 가장 중요한 동맹인 서유럽과 심각한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미국의 리더십 공백을 채우는 역할을 자임한 서방 지도자가 바로 마크롱이다.
트럼프 정부 출범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결정으로 포퓰리즘의 흐름이 굳어지는 것 같던 서구에서 극우 포퓰리즘 세력을 자국에서 완파하고 등장한 '신예' 마크롱은 국제사회의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개방경제와 다원주의의 강력한 지지자인 그는 미국이 탈퇴한 파리기후협정의 유지·발전을 주도하는 한편으로 미국이 파기한 이란 핵 합의 유지를 위해 미국을 제외한 유럽 주요국들을 규합해 이란 핵 문제에 대처하고 있다.
작년 말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정상을 잇달아 초청해 정상회담을 하면서 트럼프 체제 출범 이후 더욱 심각해진 양측의 갈등을 중재하는 등 프랑스의 '피스메이커'(peacemaker) 역할을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마크롱은 프랑스와 전쟁까지 벌여 독립한 알제리의 독립유공자가 프랑스군의 고문으로 숨졌다는 내용을 역사상 처음으로 인정하고, 옛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에서 빼앗아온 문화재의 반환을 약속하는 등 프랑스의 제국주의 시절의 과오를 털어내는 '과거사 청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마크롱이 자임하는 이런 '평화의 중재자' 역할은 현재의 한반도 해빙 기류와도 아귀가 들어맞는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동북아시아에 대한 전략적 관심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영국의 EU 탈퇴 결정으로 유럽연합 유일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겸 핵보유국이 되는 프랑스는 최근 들어 북한 핵 문제에서도 조금씩 목소리를 내려고 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양자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미래와 관련해 마크롱 대통령이 현재 진행되는 평화 프로세스에 대해 어떤 평가와 입장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국가개조' 목표 동시다발 개혁추진…지지율 폭락 속 심각한 위기 맞아
마크롱은 국제무대에서는 프랑스의 위상과 영향력을 몇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지만, 반대로 국내에서는 지지율 폭락 속에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유권자들이 마크롱이 국제사회에서 프랑스의 위상을 높인 점은 인정하면서도 국내에서는 잘 못 한다는 평가가 많아지고 있다.
마크롱은 노동 유연화, 공무원 감축, 세율 인하, 혁신경제 조성, 정치인 특권 감축 등 굵직한 국정과제를 쉴새 없이 추진했지만, 전통을 중시하고 변화에 거부감이 있는 프랑스 사회에서는 대대적인 '프랑스 개혁' 노선을 호평하는 유권자들이 많지 않다.
단적으로, 마크롱의 국정 지지율은 작년 5월 취임 직후 60% 초·중반대에서 최근 20% 중후반대로 줄곧 추락했다.
프랑스는 대선 결선투표제를 운용하는 나라라 단순 비교가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거의 같은 시기 집권한 문재인 대통령의 현 국정 지지율(60% 초·중반대)과 비교하면 격차가 더 두드러진다.
마크롱의 지지율은 역대 프랑스 대통령 중에서도 인기 없기로 악명 높았던 전임 프랑수아 올랑드(사회당)보다도 낮으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회복 불가능한 수준"(프랑스여론연구소 제롬 푸케 소장)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마크롱은 최근 두 달 사이에는 자신의 대선캠프 사설 경호원 출신 수행 비서가 노동절에 경찰관 행세를 하며 시위대에 폭력을 행사한 사건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이 와중에 최근 5주 만에 장관 3명이나 사퇴하면서 정치적 위기는 더욱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각료 중에서 대중적 인지도와 지지율이 가장 높았던 니콜라 윌로 환경장관이 원전 감축 연기를 놓고 대통령·총리와 이견을 보이다가 전격 사퇴한 데 이어, 최근에는 대통령의 정치적 후견인을 자처했던 각료 중 최연장자 제라르 콜롱(71) 내무장관이 사퇴했다.
콜롱은 마크롱의 각료 중 정치 경륜이 가장 풍부한 인사로, 시민사회나 기업인 출신 위주로 채워진 내각에서 마크롱에게 정치적 조언을 아끼지 않은 최측근이었다.
그러나 수행비서 스캔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마크롱과 사이가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악화했다.
이런 가운데 마크롱이 최악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중폭 이상의 개각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국정운영 전반을 크게 의지했던 콜롱이 나가버린 상황에서 정부 내에서 중심을 잡고 정치적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중량감 있는 인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물론 행정의 달인 평가를 받는 에두아르 필리프(47) 총리가 있기는 하지만, 갓 마흔인 대통령과 40대 후반 총리가 이끄는 젊은 정부를 위기에서 구하려면 정치적으로 노련한 거물들이 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크롱의 젊음과 패기, 새로움에 이끌려 합류했던 인사들이 정부의 미숙함과 독선에 실망해 속속 이탈하는 상황에서 어떤 거물을 끌어올 수 있을지 의구심이 큰 상황이다.
당초 지난 10일 개각을 발표하려 했던 마크롱은 아르메니아 방문 이후로 연기했다. 마크롱은 정치 일정상 문재인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이 끝난 뒤에야 개각을 단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력지 르몽드는 최근 분석기사에서 "의회에서 여당이 과반인 데다 야권은 분열되고 힘도 없는 상황에서 마크롱의 제1의 적은 마크롱"이라면서 "실패를 겪어보지 않은 대통령이 변하지 않겠다고 고집부리다가는 그의 '국가개조' 프로젝트는 공허한 울림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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