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누운채 거리 나선 근육장애인들…"24시간 활동지원해야"
대한문부터 청와대 앞까지 행진…"활동지원사 휴게시간 규정한 개정 근로기준법으로 위험 커져"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우리에게 거리에 나서는 일은 목숨을 거는 일입니다. 그런데 살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고위험성 희소난치 근육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이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이끌고 거리에 나섰다. 장애인활동지원사들에게 휴게시간 부여를 의무화한 근로기준법 개정에 반발해 장애인활동지원사업을 특례업종으로 지정할 것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고위험희귀난치근육장애인생존권보장연대(근장생존권보장연대)는 10일 청와대 분수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수 장애인을 고려한 장애인 복지 정책을 추진하고,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의 특례업종 지정을 추진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오후 2시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집결해 '침대에서 부르짖는 절박한 외침'(shouting on the bed)이라는 이름으로 이동형 침대와 휠체어를 타고 기자회견 장소까지 행진했다. 근장생존권연대 측은 인공호흡기를 착용한 근육장애인들이 침대를 이끌고 거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의 휠체어와 침대에는 '중증 장애인 활동지원 24시간 지원하라', '차라리 안락사 시켜주세요', '근육장애인 지원 법률을 제정하라' 등의 피켓이 붙었다.
추워진 날씨 탓에 행진 중간중간 보호자들은 침대에 누운 장애인들을 위해 담요를 고쳐 덮어줬다.
패딩 점퍼를 입고 나온 서보민(28) 씨는 "우리는 워낙 고위험 환자이기 때문에 거리에 나오려면 목숨을 걸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살고 싶어서 나왔다"고 전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장애인들은 범용 인공호흡기를 보조배터리로 충전한 채 행진에 나섰다.
3시간 가까이 행진을 마치고 기자회견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인공호흡기가 거의 방전돼 청와대 사랑채 초소에서 급히 전력을 끌어와 충전하기도 했다. 인공호흡기 착용자 중 한 명은 기자회견을 앞두고 호흡 문제를 겪다가 119구급대에 의해 이송됐다.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주 52시간 근무가 시행된 7월부터 장애인 활동지원기관은 활동지원사의 근무시간에 따라 4시간일 경우 30분, 8시간일 경우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근무시간 중 부여해야 한다.
인공호흡기를 사용하는 최중증 근육장애인들은 이 때문에 하루 최소 30분, 최대 3시간 동안 호흡기 사고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근육병은 신체의 모든 근육이 점차 퇴화해 결국에는 생명을 잃게 되는 무서운 희소병"이라며 "혼자 있을 때 인공호흡기가 고장 나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계속 살아가야 하느냐"고 하소연했다.
아울러 "기존에도 최중증 근육장애인들은 활동지원 시간 부족 때문에 혼자 있는 동안 사망사고가 빈번히 발생했다"며 "이제 활동지원사의 휴게시간까지 도입되면서 더욱더 사망 위험에 노출되게 됐다"고 강조했다.
함께가자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속 활동지원사 권소영 씨도 "30분씩 휴게시간이 우리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수당도 줄어든다"며 "휴게시간 동안 내가 맡는 장애인들은 누가 어떻게 보살피느냐"고 말했다.
고위험 희귀 난치 근육장애인 임성엽(30) 씨를 아들로 둔 김민경(55) 씨는 "활동보조는 이용자를 위한 제도"라며 "이용자들에게 맞는 서비스가 안정적으로 제공된 뒤 활동지원사들에게 튼튼한 일자리가 제공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증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안정적인 활동지원 시스템은 아직도 먼 나라 이야기"라며 "휴게시간을 법제화한다는 발상은 시기상조이며, 합리적인 방법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아들인 임 씨는 침대에 누운 채로 "왜 당사자와 보호자, 활동지원사 모두가 불안해 하고 생존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정책을 시행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며 "활동지원서비스가 특례업종에 포함돼 대한민국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생명권을 보장받고 싶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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