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답하다] 김미연 위원 "장애인 정책은 인권 측면에서 수립돼야"

입력 2018-10-14 09:00
[묻고 답하다] 김미연 위원 "장애인 정책은 인권 측면에서 수립돼야"

"장애인 이동권, 일반 대중교통 접근으로 해결"

"지역사회 활동보조지원제도 확대로 탈시설 추진해야"



(서울=연합뉴스) 김은주 논설위원 = "장애인 정책은 단순히 복지, 보호, 지원이 아닌 인권의 측면에서 수립돼야 합니다."

김미연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CRPD) 차기 위원은 "복지, 보호, 지원은 국가가 장애인에게 당연히 해야 할 의무"라고 전제하고,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이행했다고 볼 수 없다. 문제는 장애인들의 인권이 어떻게 보장되는가이다"라고 강조했다.

내년에 임기를 시작하는 김 위원은 "장애인이 사회에서 어울려 살 수 있으려면 이동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특수차량이 있어야 한다는 편견을 버리고 저상버스를 확대하는 등 일반 대중교통에 장애인이 쉽게 접근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시설에 고립되는 것보다는 활동 보조인들의 도움을 받아 지역사회에서 함께 생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CRPD) 위원으로 선출됐다.

▲ 2001년부터 2006년까지 8차례 특별위원회 회의를 거쳐 유엔에서 장애인권리협약이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여성 조항이 따로 없었다. 한국의 장애 여성들이 문제를 제기했고 우리 정부가 이를 받아들여 여성 조항을 넣자고 제안을 했다.

이 조항을 만들기 위해 각국 장애 여성들이 이견 조율을 해야 했다. 2002년부터 4년 동안 코디네이터를 맡아 장애 여성들의 목소리를 조직화하고 대변하는 일을 했다.

결국 장애 여성 조항이 들어간 상태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이 2006년 12월 유엔총회에서 통과됐다. 177개 국가가 장애인권리협약에 가입했다.

회원국은 4년마다 국가별 보고서를 제출하고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심의한다. 지난 6월 이 위원회의 위원에 선출됐다.

-- 위원 활동은 어디에 중점을 둘 것인가.

▲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장애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우리나라에는 장애 여성 성폭력상담소가 29곳이 있다. 장애 여성에 특화된 보호, 자립까지 지원한다. 쉼터도 있고, 해바라기센터에서 지적장애 소녀들도 담당한다. 이러한 시스템을 갖춘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법률 지원이 가능한 권리옹호센터도 16개 곳이 문을 열었다.

여성과 장애라는 이중차별(double discrimination)에서 나아가 지금은 교차차별(intersectional discrimination)을 이야기한다. 빈곤, 사회환경, 인종차별, 성 소수자, 이주, 난민, 긴급구호 등의 문제가 장애와 중첩된다. 마이너리티 그룹과 중첩된 장애인 지원에 관심을 갖겠다.

--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의 수준은.

▲ 우리나라 장애인 관련법은 14개이고, 계속 만들고 있다. 구조적인 하드웨어로는 선진국이다. 이 법들은 그때그때 이슈에 따라 법을 요구하는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나오면 만들어졌다. 교육, 노동, 건강, 가족 등 이슈별로 관련법들이 다 있다. 그러나 예산이 제대로 반영되어 실행될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이다. 각 법을 이행하는 정확한 책임이 부여된 부서가 있는 곳이 많지 않다. 장애인 정책이 양적으로는 발전했으나 실효성이 떨어진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장애인을 위한 물리적인 시설은 갖춰지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인식, 이해, 인권의 측면에서 봤을 때 어떠한가. 사회에서 차별받지 않고 동등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이 부분은 낙후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 정부는 여러 가지 장애인 복지 대책을 내놓고 있다.

▲ 장애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고충을 받아주려는 태도는 지난 정부들에 비교해 훌륭하다. 그러나 듣는 것과 이행하는 것은 다르다. 이행의 측면에서는 아직 만족스럽지 못하다. 장애인들이 원하는 이슈들은 간단한 것이 아니다. 지속해서 많은 것을 투여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현실성이 있는지는 좀 더 봐야 한다. 변화와 혁신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예산이 투입되지 못하면 그것은 변형되는 것이다.

평창 패럴림픽 이후 장애인 체육 시설 예산이 실제로 늘었다. 정부가 패럴림픽을 계기로 장애인 체육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 지난 폭염으로 24시간 활동 보조 서비스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 전신이 마비된 중증 장애인들은 평범한 계절에도 일상에서 활동 보조인이 없으면 꼼짝할 수 없다. 활동보조지원법에 따라 심의를 요청하면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등급을 매긴다. 예컨대 3등급이 나오면 1주에 72시간 활동 보조인이 온다. 예산이 한정돼있어 24시간 활동 보조인 혜택을 받는 대상자의 수는 너무 적다.

외국은 몇 명이 교대로 중증 장애인 한 명을 돌본다. 우리는 한 사람이 하다가 야간에 가버리면 장애인은 그냥 누워서 견딘다. 불이 나도 도망칠 수가 없고, 자세가 잘못되면 한순간에 숨이 막혀 죽는다.



-- 장애인 탈시설 전환 요구가 나오고 있다.

▲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로 장애인 시설에 입소하는 경우가 많다.

개별적으로 지역사회에서 살면서 활동보조지원제도에 따라서 활동 보조인의 지원을 받는 것이 가장 좋다. 시설에도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에 지역사회 플랜으로 전환하면 된다. 그러나 기존의 시설을 없애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평생 사회복지재단을 꾸려온 사람들이 탈시설 하겠다고 하면 그냥 있을 리가 없다. 스웨덴의 시설폐쇄법처럼 국가가 전향적으로 법을 만들어놓고 보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연구해야 한다.

-- 장애인 이동권이 보장돼야 한다.

▲ 지하철역은 90% 이상 엘리베이터가 설치돼있다. 지난해 리프트 사고로 장애인이 사망한 신길역은 위험한 상태로 방치돼있었다. 리프트는 안전 시스템이 없어 위험하다. 사망한 사람은 뇌병변 장애인이었는데, 리프트 조절이 잘 안 됐다. 엘리베이터가 있었더라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휠체어가 대중교통에 100% 접근이 된다. 특수차량은 정말 장애가 심한 사람, 긴급 상황, 시설 소유의 특수차량 등이다. 나머지는 트램이든 버스든 기차든, 심지어 융프라우 산악기차도 휠체어를 탄 채로 탈 수 있다. 제네바의 트램과 버스는 퍼즐처럼 생긴 장치를 누르기만 하면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장치가 올라온다. 뉴욕 노랑 택시의 50%가 휠체어가 탈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 장애인 교육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 최근 '무릎 호소' 학교 사건은 님비현상, 부동산, 선거공약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아쉬운 것은 장애인, 부모 등 당사자가 결정적인 순간에 배제됐다는 것이다. 결국은 정치적 협상이 필요했다. 그러나 특수학교 문제를 사회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통합교육과 관련해서는 '통합교육으로 갔을 때 오히려 장애에 맞게 교육받지 못하고 소외되므로 특수학교가 필요하다'는 입장과 '통합사회이므로 어떤 유형의 장애인이든 일반 사회에 적응하며 살고, 일반 학생들도 장애인과 사는 것에 적응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두 그룹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다.

-- 장애등급제 폐지 요구가 있다.

▲ 주민등록증 구조 속에서 장애인등록제도가 등장했다. 등급을 나누기 시작한 것은 예산을 무한정 책정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였다. 장애가 심한 사람 위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등급을 책정하기 위해서는 의사의 진단을 받게 한다. 내 경우 침대에 누워 온몸에 바늘이 꽂힌다. 근력 측정을 위해서다. 얼마나 불편하고 모욕적인가. 대면해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는데 척도 기준에 따라 측정한다. 개인정보 노출은 물론이고 그 자체가 인권침해이다. 장애 등록증 자체가 낙인이다.

-- 장애 운동을 하게 된 계기는.

▲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았다. 식품영양학과를 나와서 영양사로 취업하려고 했는데 장애인이라고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우연히 장애인들과 컴퓨터 통신을 하며 동호회 모임을 갖게 됐다. 나는 가족이 지원해서 일반 환경 속에서 자유롭게 자라서 대학까지 나왔는데, 장애인 상당수는 학교는커녕 집 밖을 나온 적도 거의 없었다. 장애인들의 열악한 환경에 충격을 받았다.

장애인복지신문을 구독하다가 시민학교에 갔다. 거기서 장애인 문제를 사회적 관점에서 보게 됐다. 장애인복지신문 객원기자를 하면서 현장을 알게 됐다.

1994년 베이징 세계여성대회가 열렸다. 여성계가 모여 참가단을 꾸몄다. 취재를 갔다가 안건에 장애 여성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장애 여성도 여성인데 왜 장애 여성에 관해 관심이 없는가, 안건에 장애 여성을 넣어달라고 요구했다. 장애 여성 대표로 베이징에 갔다. 대회에는 세계 장애 여성 리더 200명 정도가 모였다. 그때부터 장애 여성 운동의 국제 네트워크에 들어가게 됐다.





※ 김미연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 차기 위원은 2002∼2006년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제정을 위한 특별위원회 한국정부 자문위원, 2010년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국가보고서 자문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국내에서는 2006∼2007년 장애청년여성경력개발센터 소장, 2011∼2015년 국가인권위원회 자문위원, 2013년 장애인법연구회 기획 이사로 활동했고, 현재 장애여성문화공동체 대표, 열린 네트워크 이사, 한국장애인개발원 국제협력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kej@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