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트라우마 치유할 '안전한 애도' 프로그램 필요"
4·3 70주년 교육부문 세미나…"세대 간 소통으로 억압된 불안감 해소"
(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제주4·3 관련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부정적 감정을 환기할 '안전한 애도'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0일 오후 제주대 아라컨벤션홀에서 열린 제주4·3 70주년 교육부문 세미나 및 토론회에서 임애덕 사회복지학 박사는 '평화와 인권교육을 통한 4·3 트라우마의 사회 치유모델'에 대한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임 박사는 2008년부터 2014년까지 6년여간 4·3 당시 중학생이었던 아버지와 나눈 대화 내용, 아버지가 그림으로 그려낸 4·3의 공포와 불안에 대해 연구해왔다. 임 박사의 아버지가 그린 작품은 2010년 4·3평화공원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임 박사는 "아버지가 소년으로서 경험한 4·3의 불안과 공포는 4·3 트라우마로 보였다"며 "대화하며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통해 아버지는 평화로운 노년기를 맞게 됐고, 저는 아버지의 아픔을 통해 지역사회의 아픔을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임 박사는 아버지의 감정을 환기하는 데 성공한 핵심적 요인은 아버지와 딸 간의 신뢰적 관계에서 나오는 심리적 안정감이라고 판단했다.
임 박사는 아버지처럼 4·3 관련 공포와 불안이 있었을 다른 제주 노인들의 아픔을 달래고자 2015년 제주대 사회복지연계전공 대학생들이 조부모와 대화하며 4·3 관련 감정을 환기하는 단기응용 실천 프로그램을 설계해 적용했다.
2016년에는 사회복지기관에서 4·3 체험세대와 2세대, 3세대가 함께 하는 세대 간 소통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제주 저청중에서는 4·3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 향상을 위한 평화인권교육 프로그램을 진행, 청소년들에게 조부모나 동네 어르신을 찾아가 인터뷰하고 결과를 발표하도록 하기도 했다.
기관이나 학교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함으로써 참가 노인들에게 사회적 승인을 받았다는 안도감을 줬다.
임 박사는 이런 프로그램들을 통해 4·3을 체험한 세대의 충격과 불안은 물론 2세대, 3세대까지 흐르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사회적으로 치유하는 방법을 시도했다.
임 박사는 "4·3 트라우마는 제주인을 둘러싼 모든 환경에서 '안전감'을 확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며 "개별적으로는 애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거시적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공포 속 금지된 애도'가 된다"고 말했다.
임 박사는 4·3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안전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근현대사 역사교육을 통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며, 언론이나 지역정치가 4·3 관련 제주인을 왜곡하는 위험을 제거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경로당, 학교, 기관, 종교단체 등에서 세대 간 소통 프로그램을 지원해 오랫동안 억압됐던 4·3 관련 불안, 공포, 원망, 죄책감 등 부정적 감정을 환기할 애도 프로그램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며 "심리사회적 안전감이 확보된 가운데 서로의 아픔을 안아주는 4·3 치유 공동체가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서는 이어 박진우 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 사무처장이 전국 학교·단체를 대상으로 4·3 강좌를 진행하면서 느낀 내용을 토대로 사례발표하고, 박진수 애월고 교사는 올해 일본 교사들과 한일 역사 공동수업을 진행하면서 오키나와와 제주의 아픈 역사를 이해하고 공유한 결과를 발표했다.
송시우 한림고 역사교사는 평소 4·3 유적지 순례를 통해 학생들이 인식하는 4·3과 과거 제주 선조들이 어떻게 고난을 극복해왔는지에 대해 발표하고, 이원재 제주대 사회과학대학 학생회장은 중·고교 시절 받은 4·3교육과 대학생활을 하며 체험한 4·3에 대해 이야기했다.
ato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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