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우리동네] 캔버스가 된 담벼락…'한국의 몽마르트르' 통영 동피랑

입력 2018-10-13 11:00
[쉿! 우리동네] 캔버스가 된 담벼락…'한국의 몽마르트르' 통영 동피랑

철거 위기 이겨내고 마을재생사업 통해 국내 대표 벽화마을로



(통영=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 한때 재개발 계획으로 철거될 뻔했던 달동네에서 지금은 하루 평균 3천여명이 찾는 국내 대표 벽화마을이 된 곳.

통영항을 끼고 중앙시장 뒤쪽으로 좁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면 동화 속 그림 같은 알록달록한 색채의 마을을 찾을 수 있다.

마을 담벼락에 그려진 각종 벽화 때문에 자유분방한 예술 향취가 느껴져 '한국의 몽마르트르'라 불리는 동피랑이다.

◇ 평범한 달동네에서 벽화마을 대표 관광지로

'동피랑'이라는 이름은 '동쪽'과 '비랑'이라는 말이 합쳐지면서 생겼다.

'비랑'은 '비탈'의 통영 사투리인데 그 앞에 '동쪽'을 나타내는 말 중 '동'만 떼어 붙이며 '동피랑'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이곳은 조선 시대에 이순신 장군이 설치한 통제영(統制營)의 동포루(東砲樓)가 있던 자리로 6·25 전쟁을 거치며 섬에서 육지로 나온 사람, 실향민, 뱃사람 등이 터를 잡아 형성됐다.

이후 동피랑은 줄곧 서민들의 삶터였으며 벽화마을로 변하기 전인 2007년에도 저소득층 주민 약 80가구 120여명이 살고 있었으며 지금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애초 통영시는 낙후된 마을을 철거하여 동포루를 복원하고 주변에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주민 대다수가 저소득층이어서 공시지가를 토대로 보상을 받고 다른 곳으로 간다면 제대로 살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러자 2007년 10월 통영RCE, 푸른통영21추진협의회 등 단체들이 나서 현지 답사를 하며 주민 의견을 들었다.

조사 끝에 이 단체들은 지역 역사와 서민들 삶이 녹아 있는 독특한 골목 문화로 마을을 재조명하자는 의견을 냈다.

공공미술을 통해 문화와 삶이 어우러지는 마을을 만들어 예향 통영을 체감할 수 있는 장소로 가꾸자는 것이었다.

방향을 잡은 이들은 전국에서 직업 화가는 물론 미대생과 일반인까지 섭외해 낡은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벽화로 꾸며진 동피랑 마을에 대한 입소문이 나자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며 관광명소가 된 마을을 보존하자는 여론도 형성됐다.

이에 시는 동포루 복원에 필요한 마을 꼭대기 집 3채만 헐고 마을 철거방침을 철회했다.

철거 대상이었던 동피랑 마을은 현재 형형색색의 벽화를 구경하려는 관광객들 발길이 끊이지 않으면서 새로운 명소로 변모했다.



당시 벽화를 그리는 데 쓰인 예산은 수천만원에 불과했다.

삶의 애환이 서린 터전을 지키고자 하는 단합된 의지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큰 성과를 일궈낸 것이다.

동피랑이 유명해지면서 관광객을 끌어모으자 전국에 벽화마을 조성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 '주민참여형 디자인'으로 일궈낸 기적…2년마다 벽화 새단장

특히 동파랑 벽화는 '커뮤니티 디자인'(community design) 개념을 본격 도입한 것으로 잘 알려졌다.

'커뮤니티 디자인'이란 사람과 마을이 서로 연결되는 방법을 찾기 위해 현지 주민의 의견을 먼저 듣고 이를 분석한 데이터와 디자인을 공공사업에 접목하는 것이다.

가령 공원을 만들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인력과 예산을 투입해 단순히 아름다운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아닌 지역 사람들이 스스로 공원을 만들게 유도하는 '주민참여형 디자인'이 더 특별한 가치를 생산한다는 개념이다.

동피랑도 몇장의 벽화를 형식적으로 나열한 것이 아닌 예술에 대한 깊은 조예나 학식 없이도 누구나 천천히 걸어 다니면서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재구성하고자 노력을 기울인 끝에 지금 모습이 됐다.



낡고 얼룩진 벽을 캔버스로 만들어 단절과 외로움이 아닌 마을 사람들과 외지인들이 소통하는 수단으로 만들기 위한 시도는 골목 그림 공모전 등 각종 참여형 행사로 이어졌다.

2년마다 동피랑 벽화를 새로 단장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동피랑 벽화 축제에는 전국 100여개팀이 몰릴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2년마다 벽화를 새단장하니 짧은 시간에 흉물이 되는 단점도 보완하고 동피랑을 다시 찾는 사람도 늘었다.

매년 50여개의 지자체와 단체가 벽화를 모티브로 한 마을 만들기 성공사례를 살펴보기 위해 방문하고 있다.

동피랑이 이처럼 성공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주민들이 벽화를 그리는 작가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등 스스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마을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통영을 찾는 사람들에게 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 정상에서 주변 경관을 눈에 담은 뒤 동피랑을 찾는 것은 일종의 관광코스가 됐다.

◇ 카페에 들어서면 통영 강구안이 한눈에…주민 일자리·소득 창출

제멋대로 꼬불꼬불 구부러진 오르막 골목길 300m 길이로 달동네 특유의 옛정서와 현대적인 벽화가 뒤섞여 독특한 운치를 은은하게 풍긴다.



담벼락은 줄줄이 이어진 모습이 마치 소라고둥 속을 닮았으며 마을 전체를 뒤덮은 벽화는 저마다 개성을 뽐내는 다양한 모습과 색깔을 하고 있다.

동피랑 마을 언덕에서 바라보는 해안선과 통영항 풍경은 통영을 '동양의 나폴리'라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이곳은 또한 총 30여개에 달하는 카페로 유명한데 언덕이라 바다가 한눈에 보여 커피를 마시면서 경치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앉아서 풍경을 바라보거나 일행과 수다를 떨 수 있는 일반적인 카페도 있으나 입석 형태의 노천카페도 많다.

통제영성 망루인 '동포루'가 있는 마을 꼭대기에 오르면 강구안 절경이 한눈에 들어오며 마을 곳곳은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활용된다.

화가나 작가 등 예술가들이 빈집을 리모델링해 작품활동을 하는 곳도 있다.

최근 동피랑에는 예전에 찾아볼 수 없던 가게 10여개가 문을 열고 성업 중이다.



주로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게스트 하우스와 꿀빵, 간단한 음료수 등을 판매하는 곳이다.

작은 가게지만 벽화마을이 유명세를 치르며 하나둘 자생적으로 생기고 있으며 모두 주민들 주요 소득원이다.

이곳에서 3년째 카페를 운영 중인 남모(60·여)씨는 "벽화마을이 조성되기 전에는 저물녘 막걸리를 마신 노인들의 고즈넉한 노랫소리가 들리는 흔한 달동네였다"며 "입소문을 타면서 몰려든 관광객들 덕분에 주민들이 먹고사는 것이나 다름없어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동피랑은 매년 관광객 약 200만명이 찾는 통영 최고 관광지로 2년마다 벽화를 교체해 사람들이 꾸준히 찾는다"며 "조선업 경기가 좋지 않으면서 관광업 활성화가 지역경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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