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사랑 각별한 교황, 북한 땅 밟는 첫 가톨릭 수장 될까(종합)
교황청 외교 관계자 "평화·사목 위해 결단내릴 가능성"
외교가, 프란치스코 교황 내년 일본 방문 시 북한도 들를지 주목
(바티칸시티=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양 방문을 초청했다고 9일(현지시간) 청와대가 밝힌 가운데, 그동안 한반도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표명해온 프란치스코 교황이 과연 역대 교황 가운데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는 일이 성사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교황청은 아직 이에 대해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고, 교황의 바쁜 스케줄을 고려할 때 교황의 평양 방문 가능성을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다는 것이 교황청 외교가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평소의 각별한 한반도 사랑과 함께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 화해를 위해 워낙 큰 관심과 지지를 표명해온 점에 비춰볼 때 교황이 평양 방문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교황청의 한 외교 관계자는 "교황이 개별 나라를 방문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요소가 크게 평화와 선교"라며 "교황이 북한 방문이 이에 부합한다고 판단할 경우 초청에 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개별 국가로부터 초청을 받았다고 해서 이에 다 응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교황이 북핵 위기와 한반도의 대화 국면에서 고비 고비마다 지지 성명을 아끼지 않는 등 한반도 평화에 보인 관심을 생각하면 평양에 가는 쪽으로 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 이듬해인 2014년 8월에는 한국 천주교회의 초청에 응해 4박 5일 동안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교황이 아시아 최초의 순방지로 한국을 선택한 것은 평소에 한국과 한국 천주교회에 지대한 호감이 있었던 데다 당시 한국에서 아시아청년대회가 열려 교황의 해외 순방 기준인 '평화와 선교'라는 기준에 들어맞았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갈등을 중재하고, 전 세계 평화를 촉구해온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관된 행보도 교황의 평양 방문 성사 쪽에 무게를 싣는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교황은 2013년 즉위 이래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콜롬비아 평화 협정 타결 등에 막후 역할을 하는 등 적대국 또는 갈등 관계에 있는 세력 간의 관계 정상화와 화해에 상당히 기여해 왔다.
김정은 위원장도 교황의 이런 행보를 익히 알고 있는 까닭에, 이번에 문 대통령을 통해 평양 초청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교황청 관계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교황청 관계자들은 시기적으로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김정은 위원장의 초청을 수락할 여건이 갖춰져 있는 데에 주목했다.
교황이 최근 "내년에 일본을 방문하고 싶다"고 밝힌 터라, 교황청 외교가에서는 교황의 내년 일본 방문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상황이다.
교황은 해외 순방 시 지리적으로 가까운 여러 나라를 묶어서 가는 것이 일반적인 터라, 내년에 일본을 방문하는 길에 자연스럽게 북한도 함께 들를 수 있다는 가설이 제기된다.
교황청의 한 소식통은 "북한을 방문할 만한 여건은 이미 조성돼 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교황의 의지"라며 "교황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내주 만남에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눈 뒤 결국 스스로 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교황이 만약 평양 땅을 밟는다면 역대 교황 가운데 처음 북한을 방문하는 것이 된다.
AP통신에 따르면 북한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통치하던 시절인 2000년 당시 교황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평양에 초청했으나, 이는 현실화되지 못했다.
교황청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재위 시절인 1980년대 말에 북한에 특사를 파견하는 등 공식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고, 최근에도 가톨릭 구호단체를 통해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는 등 북한과 공식·비공식 접촉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교황청은 이날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내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현지시간으로 오는 18일 정오에 문재인 대통령과 교황청에서 개별 면담을 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교황이 가장 바쁜 시기에 개별 인사와의 면담 시간을 정오로 잡은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3∼4년에 한 번씩 열리는 교황청의 가장 큰 행사로 꼽히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 시노드)가 지난 3일 개막해 오는 28일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즉위 이후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는 교황이 면담 시간에서부터 문 대통령과 충분히 대화하겠다는 각별한 배려가 드러난다는 것이 이곳 외교가의 해석이다.
교황과 문 대통령의 면담 하루 전인 오는 17일 오후 6시에는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청 국무총리 격인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 주재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가 진행된다. 이 미사에는 문 대통령을 비롯해 교황청 외교단과 재이탈리아 교민들이 참석해 한반도 평화와 번영, 남북 화해를 기원할 예정이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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