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한글날 돌아보는 한국어 경시와 오남용
(서울=연합뉴스) '뮈안해' 'Aㅏ 그렇구나' '맘충'(개념 없는 아이 엄마) '틀딱충'(틀니를 딱딱거리는 노인들)…. 방송과 인터넷에서 횡행하는 우리말 훼손, 남용 사례다. 9일은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한 지 572돌 되는 날이다. 갈수록 심해지는 한국말 경시, 한글 파괴 현상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말에 외국·외래어가 범람한 지 오래다. 전문 용어를 많이 쓰는 학술 분야는 말할 것 없고, 민생과 직결된 법률, 행정 분야에 낯선 외국·외래어가 판을 친다. 불가피할 때도 있지만 쉬운 우리말을 두고 일상에서조차 그러할 때가 많다. 한국어를 깔보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생활화된 뒤에는 신조어와 줄임말이 유행해 의미 전달이 잘 안 될 정도다.
근래 들어서는 빈부 격차 심화로 사회 갈등이 눈에 띄게 두드러지고 서민 생활이 팍팍해지면서 타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 경멸을 담은 말들이 늘고 있다. 사회 구성원이 가진 정신과 문화의 결정체가 언어라는 점에서 이는 가볍게 볼 게 아니다. 혐오 언어는 차별을 더 악화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말을 올바르게 쓰고 언어를 순화하려는 노력이 아쉽다.
관련 당국이 나서 적절히 규제할 필요도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에서 우리 말이 심각하게 오용되거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감을 표출하는 글이 인터넷에 게시되면 고치도록 명령한다. 그런데도 한글 파괴 방송 자막, 인터넷상의 혐오 언어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최소 규제 원칙을 따르고 표현의 자유를 충실히 보장하려면 당국이 쉽게 개입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을 것이다. 방송 종사자들의 인식 개선과 노력이 필요한 대목이다.
한글은 우리 민족 최대 문화유산으로 인식된다. 세계에는 약 7천개의 말이 있지만, 글자는 40개뿐이다. 이중 누가, 언제, 왜,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확실한 글자는 한글이 거의 유일하다. 더구나 한글에는 '백성이 쉽게 익히고 쓰게 하려고 만들었다'는 애민사상이 녹아 있다. 한글의 기본 글자는 발음기관인 입술, 혀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한글에 민본사상까지 담겨 있으니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올해는 세종대왕 즉위 600년이다. 한류 덕에 세계 곳곳에서 외국인이 한글을 배운다. 한글은 가장 쉬운 글자에 속해 외국인이라도 조금만 배우면 금방 읽을 수 있다. 뜻을 모르더라도 말이다. 인류 문화로 오래 사용되고 전승되게 하려면 쉽고 아름다운 한글을 갈고 다듬는 노력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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