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들의 폭력에 희생된 아메리카 원주민 '석유재벌'들
오세이 족 비극 다룬 '플라워 문'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권력을 쥔 다수의 폭력 앞에서 소수가 선택할 길은 많지 않다. 맞서다 사라지거나 조용히 굴복하는 것 외에 별도리가 없다.
신간 '플라워 문(프시케의 숲 펴냄)'은 이처럼 사회 시스템을 장악한 다수가 소수자에 가하는 폭력의 비열함과 잔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허구가 아니라 저명한 저널리스트가 직접 철저한 자료 고증을 통해 고발한 역사의 단면이어서 더 비극적이다.
무대는 유전 개발 광풍이 몰아친 1920년대 미국 중남부. 피해자는 유럽에서 넘어온 백인들과의 대결에서 밀려 이미 절멸 위기에 몰린 아메리카 원주민들이다.
다만 우리가 알던 전형적인 백인 대 아메리카 원주민 대결 구도와는 사뭇 다르다.
당시 이들 원주민은 서구인들이 과거 묘사한 야만인이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로 백인들의 부러움을 사던 터였다. 미국 언론은 이들을 '재벌', '붉은 피부의 백만장자들'로 묘사했다.
'오세이지 족'으로 불린 이들은 1870년대 부족의 오랜 터전인 캔자스주에서 오클라호마주 북동부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강제 이주됐다. 이곳은 바위투성이였기에 백인들은 별 가치가 없는 땅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수십 년 뒤 이곳에 엄청난 양의 석유가 매장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오세이지 족은 운명이 바뀐다.
석유 채굴업자들로부터 엄청난 임대료와 사용료를 받게 된 오세이지 부족민들은 엄청난 부를 누리게 됐다. 책은 당시 오세이지 족을 "재산을 인구수로 나눴을 때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로 묘사한다.
그러나 일확천금은 결국 비극의 씨앗이 된다. 사회 지배층인 백인들은 이들의 부와 행복을 질투하게 됐다.
수년에 걸쳐 이 지역에서 수상한 죽음과 의문사가 잇따르지만,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20여 명에 이르는 피해자가 모두 부유한 오세이지 부족민이었다.
책은 미국의 현대 사법 시스템이 완전히 자리 잡기 전인 이 시기에 합법을 가장한 범죄, 정치권력과 폭력 조직의 유착, 힘없는 소수에 대한 다수의 무자비한 폭력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추적한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초기 모습이 등장하는 점도 흥미롭다.
책은 지난해 미국에서 발간돼 화제를 모으면서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 '올해의 책' 종합 1위에 등극했는가 하면, 월스트리트저널, 블룸버그, 타임 등 주요 언론이 선정한 '올해의 책' 실화 부문 1위에도 올랐다.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도 포함됐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에 메가폰을 맡기고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를 주연으로 하는 영화화 작업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저자 데이비드 그랜은 '워싱턴포스트'와 '월스트리트저널' 등 유력지에 정기로 기고한 언론인이자 작가다.
김승욱 옮김. 463쪽. 1만7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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