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밍량 "상업영화 발전이 영화 가능성 해쳐"
(부산=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제가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이 '왜 영화관에서 작품을 상영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그건 시장의 문제이지 제 문제가 아니죠. 제 길을 묵묵히 갈 따름이고 저를 아끼는 분이 있다면 저와 함께 가면 되는 겁니다."
대만 뉴웨이브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차이밍량(蔡明亮)이 올해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그는 부산영화제가 남포동에서 열릴 때부터 찾은 단골손님이다.
그는 2013년 개봉한 '떠돌이 개' 이후 상업영화 배급방식으로 자기 작품을 발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그는 인터넷을 통해 작품을 공개하거나 설치미술 형태로 신작을 발표한다.
8일 해운대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그는 "시장에는 작품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아주 많고, 상업영화 위주로 발전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오히려 영화 가능성을 좁게 만들고 있다"며 극장 개봉을 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역대 부산영화제는 상업적 개봉을 하지 않는 그의 작품을 볼 기회의 장이었다. 지난해 작고한 김지석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가 그의 작품을 빼놓지 않고 국내 관객에게 소개했다.
그는 올해 신작 '너의 얼굴'을 들고 왔다. 타이베이 거리를 거닐다 마주친 12명과 그의 작품마다 참여하는 배우 리강셩(李康生) 얼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차이밍량 감독은 "영화의 독특한 표현방식 중 하나가 빅클로즈업"이라며 "오랜 시간 영화를 본 경험을 돌이켜보면 가장 인상에 깊이 남은 것은 인물 얼굴을 클로즈업한 장면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인생을 살면서 상대 얼굴을 자세히 보며 이야기하는 경우가 드물다"며 "특히 아시아 관객은 스토리가 있고 드라마가 전개되는 데 익숙해져서 '본다'는 행위 자체에 대한 훈련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차이밍량 감독은 거리에서 만난 50대 후반에서 80대 후반 인물 12명을 섭외해 1시간 동안 그들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았다. 30분은 긴장을 풀기 위해 대화를 나눴고 30분간만 촬영했다.
1시간 촬영을 위해 약 3개월 사전 작업이 필요했다고 한다. 찍고 싶은 인물을 만나는 데 시간이 필요했고 이들과 친해지고 설득하는 데도 많은 수고를 들였다고 한다.
"영화를 오래 찍다 보니 카메라에 잘 맞는 얼굴을 제법 알아봐요. 보자마자 찍고 싶다는 인상을 주는 인물들을 찾다 보니 시간이 꽤 걸렸지요."
그는 작품에 별다른 음악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일본 영화음악의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가 음악 감독을 맡아 화제가 됐다. 베니스영화제에서 사카모토 류이치와 대화를 나눈 것이 인연이 됐다고 한다.
"혹시나 해서 사카모토 씨에게 영상을 보냈는데 마음에 든다고 바로 다음 날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막상 사카모토 씨가 도와준다고 하자 너무 아름다운 멜로디를 줄 것 같아 걱정되더라고요. 한 달 뒤 사카모토 씨가 12곡을 줬는데 정말 좋았습니다. 제 영화에 음악을 해 줄 사람을 찾는 데 20년이 걸렸네요."
그는 부산영화제에 대한 애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저는 남포동 시절부터 시작해서 십수 년 동안 부산영화제를 다녀갔어요. 영화의전당은 정말 감동적이에요. 유럽에도 영화제를 위해 이 정도 공간이 마련된 곳은 없을 거예요."
고(故) 김지석 프로그래머에 대한 애정도 감추지 않았다.
"부산에 와서 김 프로그래머 묘에 참배했어요. 사실 올해는 김 프로그래머가 없어서 안 오려고 했는데 그의 묘에 향이라도 올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왔어요. 부산영화제가 아시아 최대 영화제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노고 덕분입니다."
kind3@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