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투어 마친 BTS, 팝 심장부 강타…신드롬 입증했다(종합)
6일 뉴욕 시티필드 공연 절정…22만 관객 동원한 슈퍼스타급 규모
유엔 연설 메시지 사회적인 반향도…"K팝에 새로운 문 열어"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세계적인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월드투어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로 미국 팝의 심장부를 강타했다.
이들은 6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 홈구장인 4만석 규모 시티필드에서 이번 월드 투어 중 북미투어를 마쳤다. 지난달 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센터를 시작으로 시티필드까지 한 달간 미국과 캐나다(1곳) 7개 도시에서 15회 공연을 열어 총 22만 팬과 만났다.
그중 이들이 한국 가수 최초로 연 시티필드 공연은 북미 투어 마지막 무대로 열기가 절정에 달했다. 영국 밴드 비틀스가 1965년 당시 뉴욕 메츠 홈구장이던 셰이 스타디움에서 전설적인 공연을 펼쳤다면, 반세기 남짓 만에 방탄소년단이 셰이 스타디움의 명맥을 잇는 시티필드 무대에서 역사를 썼다.
폭발적인 신드롬을 만들어낸 방탄소년단의 성공적인 북미 투어 의미와 이들이 만들어낸 현상을 짚어봤다.
◇ 팝 심장부 입성…"견고한 인기 입증한 지표"
이번 투어는 팝 본고장인 미국 매스컬처(mass culture·대중문화) 중심부를 밟아나갔다는 점에서 여느 K팝 가수들의 투어와 다른 상징성이 있다. 출발지인 약 2만석 규모의 스테이플스센터는 그래미 어워즈 같은 대형 이벤트가 열리는 장소이며 대미를 장식한 시티필드 역시 폴 매카트니, 비욘세 등의 슈퍼스타가 공연을 펼친 곳이다.
강문 대중음악 평론가는 "기존 K팝 가수들의 투어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며 "미국의 중요 대중문화 행사가 열리는 곳들이란 점에서 방탄소년단이 팝 심장부로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K팝은 아무리 인기가 있어도 비주류 문화로 평가받았는데 방탄소년단은 주류 시장에 진입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이번 투어는 규모뿐 아니라 예매 시작과 함께 전회 '완판' 행진을 기록해 방탄소년단의 현지 인기에 대한 일부 의구심까지 말끔히 씻어줬다. 실제 팝 시장에서는 노래 한두곡이 뜨거나 미디어가 만들어낸 현상만으론 대규모 투어를 성사시키기는 어렵다.
'강남스타일'로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킨 싸이도 현지 투어로 이어가진 못했다. 방탄소년단은 이번 투어를 통해 빌보드 차트 1위에 두 번 오른 인기의 견고함을 입증한 셈이다.
김윤하 음악평론가는 "월드투어는 어느 가수들에나 영향력을 입증하는 가장 좋은 레퍼런스로, 이번 투어는 방탄소년단의 인기를 구체적으로 보여준 지표가 됐다"며 "미국뿐 아니라 영국의 오투아레나까지 팝 시장 정점의 아티스트가 서는 곳에서 매진을 이어가며 공연한 것은 남다른 의미"라고 평가했다.
더욱 고무적인 대목은 투어 이후 가수들의 인기는 강화하고 확산하는 속성이 있다는 점이다.
강문 평론가는 "이번 투어 성과는 지금 눈으로 보이는 것으로만 평가할 수 없다"며 "향후 1~2년간 돌아올 성과는 이번 투어 결과물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 가는 곳마다 신드롬…1천500 팬 몰려 텐트촌 형성
한국 가수가 미국에서 투어를 열면서 이처럼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내기는 방탄소년단이 처음이다.
시티필드 공연은 시작 전부터 팬들의 한국어 '떼창'과 거대한 함성으로 넘실대며 'BTS 월드'가 됐다. 관객들은 오프닝곡 '아이돌'부터 앙코르 곡들까지 150분 내내 방탄소년단을 상징하는 야광봉인 '아미 밤'(ARMY BOMB)을 흔들며 한국식 응원 구호도 외쳤다.
이런 열기는 방탄소년단의 공연장마다 미국 여러 도시에서 날아온 팬들이 도심 속 텐트촌을 형성하며 예고됐다. 팬들 사이에서는 작은 마을처럼 형성된 텐트촌이 'BTS 빌리지'로 불렸다.
시티필드 주차장 역시 선착순 입장인 그라운드 입석(250달러) 앞쪽을 차지하려는 팬들이 1주일 전부터 속속 몰려들어 1천500명(소속사 발표)이 세운 알록달록한 텐트로 물들었다. 4만명이 몰릴 혼잡에 대비해 뉴욕 지하철(NYCT Subway)은 SNS에 대체노선을 추가한다고 운행 변경 공지도 했다.
빌보드, CBS 등 현지 매체들은 텐트촌 열기를 잇달아 보도했다. 폭스5 뉴스는 멤버들의 한국어 이름을 외치는 팬들을 소개하며 "이들의 인기가 글로벌 현상"이라고 전했다.
강문 평론가는 "그간 유럽과 남미 등지에서 열린 K팝 가수들 공연에 텐트족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아시아 콘텐츠에 이렇게 열광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그간 미국 K팝 팬들이 교포 중심 아시아계나 히스패닉 계가 주축을 이룬 것과 달리 피부색을 불문한 미국 젊은층으로 팬층이 확장했다는 점도 가시적인 현상으로 봤다.
이런 열기에 주목한 주류 미디어는 투어 기간 방탄소년단 '모시기' 경쟁을 했다. NBC '아메리카 갓 탤런트', NBC '지미 팰런쇼', ABC '굿모닝 아메리카' 등 이들이 출연하는 곳마다 팬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니, 이런 현상이 다시 현지 뉴스로 생산됐다.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에 있는 라인스토어에는 방탄소년단이 직접 만든 캐릭터 굿즈(goods·상품)를 사려는 팬들의 긴 줄이 이어지기도 했다.
김윤하 평론가는 "보통 해외 팬들은 K팝 자체를 좋아해 여러 그룹을 동시에 좋아한다"며 "그러나 방탄소년단 팬들은 이들 그룹만 좋아하는 팬들이 대다수란 점이 흥미롭다. 직관적으로 보이는 팬덤 양상은 한국 팬들과 흡사하고, 온·오프라인에서 하나의 집단으로서 어떤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것도 흥미롭다"고 설명했다.
◇ 유엔 연설 사회적인 반향…SNS에 '스피크 유어셀프' 물결
이번 투어는 2년 반에 걸친 '러브 유어셀프' 시리즈 앨범을 집대성한 공연이다. 이 앨범들을 통해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전파한 이들은 투어 기간이던 지난달 24일 유엔 정기총회에서 '자신을 사랑하고 스스로 목소리를 내라'며 음악과 궤를 같이한 연설을 해 사회적인 반향도 일으켰다.
대표 연설자로 나선 리더 RM은 "어제 실수했더라도 어제의 나도 나이고, 오늘의 부족하고 실수하는 나도 나"라면서 출신, 피부색, 성 정체성이 어떻든 자신에 대해 말하면서 이름과 목소리를 찾으라고 젊은 세대를 독려했다.
그러자 SNS에서는 '스피크 유어셀프'(SpeakYourself)란 해시태그로 여러 나라 언어로 청춘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자살을 생각했다는 중학생, 끝나지 않은 도전과 실패로 불행하다는 10대 청년, 내적 증오심이 있다는 여성, 자존감이 낮아 어떤 일에도 자신감이 없었다는 30대 등 방탄소년단의 음악과 메시지를 통해 용기를 얻었다는 사연이 줄을 이었다.
RM 연설은 해외 학교 수업에도 활용됐다. 스페인어를 쓰는 한 외국인 여성 팬은 트위터에 "수업 시간에 영어 선생님이 남준(RM)의 연설을 틀었다"고 영상을 공개했다.
또 유튜브에서는 이 연설의 문장과 어휘를 분석한 영상부터, 연설에 감동받아 눈물을 보이는 외국인들의 리액션 영상까지 속속 등장했다.
◇ K팝 시장에 새 문 열어…"다른 가수들 도전에 속도"
가요계는 선구자적인 1인이 일으킨 파장이 새로운 문화 현상을 만든다는 측면에서, 이번 투어가 K팝이 해외에 알려지는 새로운 루트가 됐다고 평가했다.
김윤하 평론가는 "방탄소년단은 K팝의 새로운 문을 열어 준 아티스트"라고 강조했다.
또 가요 관계자들은 지금껏 K팝 가수들의 투어가 프로모션 성격이 강했다면, 현지 단단한 인기를 기반으로 한 방탄소년단의 성공적인 투어를 본보기 삼아 다른 가수들의 도전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미 NCT 127은 첫 정규 앨범 발매를 앞두고 방송 출연 등 미국 데뷔 프로모션을 예고했다.
아이돌 그룹의 공연을 몇 차례 기획한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방탄소년단은 팝계 슈퍼스타와 같은 투어를 펼친 것"이라며 "미국 시장은 여전히 벽이 높다는 점에서 이번 투어는 다른 많은 가수에게 희망을 줬고, 도전 팀도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미 공연을 마친 방탄소년단은 9~10일 영국 런던 오투아레나를 시작으로 유럽에서 열기를 이어간다. 13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지고돔, 16~17일 독일 베를린 메르세데스 벤츠 아레나, 19~20일 프랑스 파리 아코르호텔아레나까지 총 10만명 규모의 공연을 펼친 뒤 11월 일본으로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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