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 사각' 재외공관…횡령·갑질로 곪는데 정부는 '깜깜'

입력 2018-10-07 06:02
'감시 사각' 재외공관…횡령·갑질로 곪는데 정부는 '깜깜'

일부 공관 외교부 소속 직원 4명중 3명이 징계 대상 되기도

재외공관 31곳, 10년간 본부 감사 한번도 안 받아…"내부고발 촉진해야"



(이스탄불=연합뉴스) 하채림 특파원 = 올 들어 전 공관장과 영사 2명이 줄줄이 징계를 받거나 검찰에 기소된 이스탄불 총영사관 사례는 교민 규모가 작거나 '험지'에 해당하는 재외공관이 정부의 감시 사각지대에 놓여 비위 온상이 될 우려가 큰 실태를 그대로 보여준다.

전 이스탄불 총영사관 소속 외교관 A씨는 공관 경비 담당 보직을 맡아 근무하는 기간에 혈세 약 2만6천달러(약 3천만원)를 횡령하고, 개인생활용품을 공관예산으로 구입했다.

A씨는 자신의 불법을 숨기려고 행정직원을 위협하고 차별하는 '갑질'을 일삼았다.

A씨와 함께 근무한 외교관 B씨는 공관장의 지시를 무시하고 이행하지 않는 등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처신을 하고, 역시 예산을 부정하게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 지난달 정직 1개월 징계를 받았다.

B씨는 터키 한인 인사와 민원인, 한국에서 공무로 터키를 찾은 공직자에 무례한 언행으로 대한다는 평판이 교민사회에 자자했다.

소속 외교관의 복무를 관리하며 비위를 예방했어야 할 공관장은 부하 직원의 불법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본인 역시 행정직원에게 욕설과 폭언을 하고, 청사 청소원에 빨래, 다림질, 장보기 등 개인 용무를 지시한 사실이 확인돼 올해 감봉 징계를 받았다.

작년 초 기준 이스탄불 총영사관의 외교부 소속 외교관 총 4명 가운데 3명이 징계를 받거나 받을 예정이며, 그 가운데 1명은 재판에 넘겨졌다.



A씨의 범죄 사실은 임기를 마치고 본부로 복귀한 후 뒤늦게 발각됐으며, B씨의 부적절한 예산 집행도 복무 불이행으로 귀임 조처를 당한 후에야 드러났다.

공관 전체가 비위와 갑질로 곪아가는데도 구체적인 실태는 장기간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는 규모가 작거나 '험지'에 있는 재외공관의 외교관들이 감시 사각지대에서 권한을 휘두르기 때문이다.

이스탄불에 사는 한인 S씨는 "총영사관에 근무한 지인이 사소한 일로 수시로 상관으로부터 폭언을 듣고 힘들어 했지만 아무 데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고, 결국 사직했다"면서 "현지 채용된 직원에게 외교관들은 왕이나 실세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주(州)에티오피아대사관에서는 대사뿐만 아니라 직원(외교통상6등급)도 성폭행으로 작년 7월과 10월 각각 파면됐다.

이밖에도 ▲ 미성년자 성추행 ▲ 부하직원 성희롱 ▲ 여성 감사반원 성희롱 ▲ 부하 직원과 불륜관계 ▲ 공무 중 유부녀와 부적절한 채팅 등 성 비위도 재외공관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외교부가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진영 의원(더불어민주당·서울 용산)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16년부터 현재까지 외교부 자체 감사를 받은 재외공관은 전체 183곳 가운데 42곳뿐이다.

31곳은 최근 10년간 본부의 감사를 한 번도 안 받았다.

3곳은 최근 6년간 자체 감사뿐만 아니라 감사원 감사도 받은 적이 없다.

횡령, 갑질, 성 비위 등 재외공관의 기강 해이가 계속되는 이유는 감시 장치가 미흡한 탓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그러나 세계 곳곳의 재외공관을 꼼꼼히 감사하기에는 비용과 인력의 한계가 따른다.

진영 의원은 7일 "감사 강화와 함께 내부고발자를 철저히 보호하고 주요 비리사건 고발에는 포상하는 등 재외공관 안에서 상향식 감시가 이뤄질 수 있는 제도 보완을 검토하라"고 제안했다.

tr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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