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 털어 시작한 영화제…매년 30%씩 관람객 늘었죠"
(부산=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런던에서 아시아영화제를 하는 이유요? 무엇보다 사무칠 정도로 영화제가 하고 싶었어요."
전혜정 런던아시아영화제 집행위원장은 2015년부터 영국 런던을 거점으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영화를 소개한다. 올해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참석차 귀국한 그녀를 부산 달맞이 고개 한 카페에서 만났다.
런던아시아영화제는 올해로 3회째를 맞이하지만 2015년 첫 행사를 '1회'가 아닌 '0회'로 치기 때문에 실제 나이는 4살이다.
"첫 영화제는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었어요. 일단 실험 삼아 해본다는 생각에 '1회'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았어요. 잘 되면 다음 해에 정식으로 1회 영화제를 열고 안 되면 여기서 접자는 생각이었죠."
결과적으로 전 위원장의 우려는 기우였다.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을 개막작으로 내세운 '0회 런던아시아영화제'는 성공을 거뒀고, 다음 해에 정식 출범할 수 있었다.
전 위원장이 런던아시아영화제를 이끈 기간은 4년이지만, 그가 영국에 한국 영화를 소개한 기간은 이보다 훨씬 길다. 2006년 런던 한국문화원 개소 당시 출범 멤버인 그는 한국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영화제를 떠올렸다.
"남편하고 프랑스문화원에 다니면서 무료로 상영하는 영화를 보던 생각이 떠올랐어요. 한 나라 문화를 소개하는 데는 영화만한 아이템이 없죠."
그는 런던한국문화원 내부에서는 사업총괄팀장, 대외적으로는 집행위원장을 맡아 2006년 제1회 런던한국영화제를 출범했다.
우리나라 재외공관에서 한국영화제 개최는 당시가 처음이었다. 이후 런던한국영화제는 재외공관 문화사업 우수사례로 지목됐고, 현재 대부분의 재외공관에서 한국영화제를 개최한다.
2006년부터 약 10년간 런던한국영화제를 이끈 전 위원장은 2015년 한국문화원을 나와 순수 민간 영화제인 런던아시아영화제를 출범했다.
"영화제 일을 하면서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어요. 그런데 내부적으로 갈등이 있었어요. '이 영화는 틀지 말라'고 한다든가…. 일하는 방식이 문화인데 내가 일하는 방식이 너무 촌스럽고 창피하더라고요. 내 식대로 내가 잘하는 일을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한국문화원을 나와 민간 영화제를 열기로 했지만, 당장 예산이 걸림돌이 됐다. 전 위원장은 10년간 일하고 받은 퇴직금을 털어 사비로 첫 영화제를 치렀다.
"10년간 일하고 받은 보상인데 당연히 아까웠죠. 하지만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영화제인 만큼 이 돈으로 후회 없이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죠."
10년간 런던한국영화제를 이끈 경험에 열정이 더해져 런던아시아영화제는 4년 만에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0'회 때 상영작은 고작 7편에 불과했지만 '1회' 때는 40편으로 늘었고, 지난해 영화제에서는 53편을 상영했다. 25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열리는 올해 영화제에는 동아시아 13개국 영화 60편을 상영하며 30명 게스트가 방문한다.
올해 개막작으로는 김태균 감독의 '암수살인'을, 폐막작으로는 싱가포르 에릭 쿠 감독의 '라면 샵'(Ramen Shop)을 선정했다.
또 올해 처음으로 시상하는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 신인상 수상자로는 배우 김윤석, 한지민, 김다미를 선정했으며, 감독상 수상자는 경쟁부문에 초청된 10편의 연출자 중 한 명을 심사를 통해 선정할 예정이다.
"관객 수도 많이 늘었죠. 지난 2회 영화제 때 1만5천 명 정도가 영화제를 찾았는데 매년 30%씩 증가했어요. 영국인 관심도 분명히 커졌어요. 초기에는 해외 감독을 초청하면 기자 한두 명이 찾아왔는데, 지난해에는 15명씩 라운드 인터뷰를 할 정도였어요."
'한국영화제'에서 '아시아영화제'로 범위를 넓힌 까닭에 대해서는 "한국 영화의 미래 먹거리를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한국 영화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에요. 성인 절반 정도가 보는 영화가 나올 정도니까요. 한국 영화의 미래 먹거리를 위해서는 아시아로 판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시아 영화는 한국 영화가 주도하잖아요. 아시아로 확장해야 우리 입지도 공고해지고 산업적 파이도 커진다고 생각해요."
민간 영화제와 정부지원 영화제 관계에 대해서는 "상호보완·협력관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는 분명히 티켓 판매를 신경 써요. 티켓을 다 팔아도 끌고 나가기 힘드니까요. 하지만 정부지원을 받는 영화제는 그런 부분은 자유로울 수 있잖아요. 민간 영화제와 정부지원 영화제가 역할을 분담해 협력해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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