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관대한 한국] ③ 공분은 커지는데…국회 문턱 못넘는 음주감형 폐지법안(끝)
형법 개정안 6건 계류, 일부 상임위 논의조차 안돼…"공감대 있지만 정밀하게 살펴야"
(서울=연합뉴스) 차지연 기자 = 술을 마신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처벌을 줄여주는 '음주 감형'이 폐지돼야 한다는 여론이 높지만, 관련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현행 형법 제10조 2항은 심신장애 상태에 있어 사물을 변별할 능력과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면 형을 감경해주도록 하고 있다.
형법 조문에 명시돼있지는 않지만 통상 음주나 약물복용을 한 사람이 '심신미약' 상태로 인정받는다.
8세 여아를 납치 성폭행,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 조두순 사건 등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으로 음주 감형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국회에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관련 개정안이 쏟아져나왔다.
현재 20대 국회에 계류돼있는 음주 감형 폐지법안은 6건이다.
가장 오래된 것은 2016년 7월 29일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 등 38명이 발의한 형법 개정안으로, 형법 제10조에 새로운 항목을 신설해 음주나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상의 약물에 의한 심신장애의 경우 감형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이다.
당시 서 의원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범죄자들도 형 감경을 위해 주취상태 또는 약물에 의한 심신미약 상태에서 이뤄진 범죄라고 주장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이로 인해 실제 감형이 이뤄지고 있다"며 개정안을 냈다.
지난해 11월 '주취 감경을 폐지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21만여 명이 서명한 이후에는 민주당 윤후덕 의원과 자유한국당 박인숙 의원도 비슷한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민주당 신창현 의원은 현행 형법 제10조 3항의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행위에는 2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는 내용에서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부분을 삭제해 자의로 술을 마시거나 약물을 복용해 심신장애 상태가 된 경우에는 감형을 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내놨다.
바른미래당 이태규 의원이 내놓은 개정안은 쟁점이 되는 제10조의 강행규정을 임의규정으로 바꿔 재판부가 범죄의 질에 따라 심신장애 상태라도 감형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도록 했다.
또한 한국당 홍철호 의원이 대표 발의한 형법 개정안은 음주 감형 폐지를 넘어 자의적으로 술을 마시고 범행을 저지른 경우 가중처벌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외에도 한국당 이명수·박완수 의원과 바른미래당 김삼화 의원은 형법 제10조가 아니더라도 공무집행방해나 성폭력 범죄의 경우 음주 감형이 적용되지 않도록 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법안은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잠들어있다.
법사위 관계자는 "형법뿐 아니라 성폭력특별법 등 다른 법안에도 음주 감형 관련 규정들이 있는 만큼 형법만 바꾸는 것보다는 다른 법과의 형평성, 통일성 등을 고려해 검토하느라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우발적인 살인이나 상해치사 등 범죄 유형별로 음주의 영향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고 단순 폐지가 아닌 가중처벌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서영교 의원안에 대한 법사위 수석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에는 '개정안은 심신장애 상태를 자의로 야기했는지 여부나 그 당시 범행을 예견할 수 있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감형을 하지 않도록 하고 있어 범행 내용이나 심신장애의 원인·정도에 따라 구체적인 타당성을 기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붙기도 했다.
다만, 법사위원들은 음주 범죄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커지고 있는 만큼, 이제 음주 감형 폐지를 위한 형법 개정안을 시급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법사위 민주당 간사인 송기헌 의원은 "음주 감형 폐지에 대해서는 법사위원들 사이에 상당한 공감대가 있지만 좀 더 정밀하게 살펴봐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며 "논의에 속도를 내 적극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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