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와 다르다…소니-마블 세계관의 선봉장 '베놈'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마블'이 돌아왔다. 지난 7월 '앤트맨과 와스프'로 국내 관객 544만7천825 명을 불러들인 지 약 3개월 만이다.
이번 작은 '어벤져스'로 대표되는 기존 마블 영화와는 여러모로 결을 달리한다. '정의의 히어로가 평화를 위협하는 악당을 물리친다'는 히어로 물의 기본 서사를 완전히 뒤집고 악당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수십 년간 '마블 코믹스'를 대표하는 히어로였던 '스파이더맨'의 숙적 '베놈'이 그 주인공이다.
성인 남성의 배가 넘는 덩치에 온몸에 폐기름을 덕지덕지 바른 듯한 흉측한 모습, 섬뜩하고 날카로운 치아는 악마를 연상케 하고 위꼬리가 치켜 올라간 눈에는 광기가 감돈다. 아무리 뜯어봐도 히어로 물의 주인공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영화는 진실을 위해서라면 몸을 사리지 않는 열혈 기자 '에디 브록'(톰 하디 분)이 외계 생물체 '심비오트'의 숙주가 된 후 스파이더맨의 숙적 '베놈'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브록은 노숙자를 생체실험 대상으로 삼는다는 의혹이 제기된 거대 기업 '라이프 파운데이션'에 잠입했다가 실험실에서 심비오트의 공격을 받는다.
심비오트는 라이프 파운데이션이 우주 탐사 중 발견한 외계 생명체로 지구에서는 스스로 호흡할 수 없어 반드시 생명체를 숙주로 삼아야만 생존이 가능하다는 설정이다.
브록은 심비오트의 힘으로 라이프 파운데이션을 탈출하지만, 자아를 가지고 머릿속으로 말을 걸어오는 심비오트의 존재에 극심한 혼란을 겪게 된다. 게다가 인간을 보면 먹어치울 생각부터 하는 심비오트의 본성에 경악하게 된다.
'베놈'은 개봉 전부터 전 세계 영화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마블 캐릭터의 영화지만 마블이 아닌 소니 픽처스가 제작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는 마블 코믹스 캐릭터들의 복잡한 판권 문제와 얽혀있다. 한때 경영난에 시달리던 마블 코믹스는 생존을 위해 캐릭터들의 판권을 여기저기에 내다 팔았다. 그 결과 스파이더맨의 판권은 소니 픽처스가, '액스맨' 시리즈의 판권은 20세기폭스가 가지게 됐다.
소니는 '베놈'을 시작으로 '마블 스튜디오'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와는 별개로 '소니 유니버스 오브 마블 캐릭터스'(SUMC)를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베놈'의 뒤를 이을 후속작 라인업까지 어느 정도 공개된 상태다.
선봉장인 '베놈'의 흥행 여부에 SUMC의 성패가 걸린 만큼 세계 영화계의 이목이 쏠리는 것이 당연하다.
3일 베일을 벗은 '베놈'은 후반부로 갈수록 진가를 발휘하는 영화다. 달리 말하면 전반부는 다소 지루하게 늘어지는 면이 있다.
시리즈의 첫 작품이자 한 세계관의 이정표 역할을 하는 작품이다 보니 초반부에 이것저것 설명할 것이 많은 탓일 수 있겠다. 어찌 보면 MCU의 초석이 된 '아이언맨' 1편과 비슷한 역할을 맡은 셈이다.
실제로 서사 구조도 '아이언맨' 1편과 흡사하다. 토니 스타크가 아이언맨이 된 배경부터 오베디아 스탠의 '아이언 몽거'를 무찌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아이언맨'처럼 '베놈'도 에디 브록이 심비오트 '베놈'과 결합하게 된 이유와 라이프 파운데이션을 무찌르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다만, 브록이 라이프 파운데이션 회장 칼튼 드레이크(리즈 아메드 분)와의 인터뷰 이후 실직하고 연인 앤 웨잉(미셸 윌리엄스 분)과 헤어지는 등 바닥으로 떨어지는 이야기가 다소 장황하게 느껴진다. 과감한 압축과 속도감 있는 전개가 아쉽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브록이 '베놈'과 결합한 이후로는 액션 히어로 물의 본색을 마음껏 드러낸다. 라이프 파운데이션과의 추격전 장면은 베놈의 쭉쭉 늘어나는 신체 능력을 십분 활용해 독창적인 액션 시퀀스를 구현해냈다.
영화의 백미는 드레이크와의 맨손 격투 장면이다. 브록과 베놈은 또 다른 심비오트와 결합한 드레이크의 음모를 막기 위해 지구의 운명을 건 대결을 펼친다.
2명의 인간과 2체의 심비오트가 마치 한 덩어리처럼 뒤엉키는 장면에서 검은 액체 형태인 심비오트의 특성을 살려 기존에 접하지 못한 영상을 선보인다.
원작 만화에서 베놈은 훨씬 야만적이고 악역에 가까운 캐릭터지만 영화에서는 상당히 매력적이고 귀여운 캐릭터로 묘사됐다. 관객층을 넓히기 위한 선택으로 보이지만 정의의 히어로도 아니고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도 아닌 어중간한 캐릭터가 돼 버렸다는 비판도 나올 법하다.
마블 스튜디오가 제작한 영화들처럼 '베놈'도 쿠키 영상(엔딩 크레딧에 포함된 짧은 영상)이 포함돼 있다. 개봉 전 2개의 쿠키 영상이 포함됐다거나 쿠키의 길이가 10분이 넘는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2∼3분 분량의 짧은 쿠키 1개가 전부다.
그러나 길이가 짧다고 가볍게 흘려버릴 내용이 아니다. 원작 코믹스의 팬이라면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악역 캐릭터가 등장해 향후 SUMC의 확장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아이언맨, 헐크, 토르, 캡틴 아메리카 등 주연 캐릭터로뿐 아니라 조연의 악역 캐릭터로도 단독 블록버스터 제작을 가능케 하는 마블 코믹스의 저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10월 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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