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답하다] 이영일 소장 "여순사건 70주년인 올해 특별법 제정돼야"
"진상규명·명예회복 제대로 안 돼…희생자 원혼 아직 잠 못 들어"
"특별법 17년째 표류…'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서 제정 운동 벌여"
(여수=연합뉴스) 전성옥 논설주간 = "여수·순천 10·19 사건(여순사건)이 발생한 지 올해로 70년이 됐습니다. 아직도 실체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꼭 특별법이 제정돼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여사연)의 이영일(60) 소장은 "제주 4·3사건이 없었다면 여순사건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제주4·3은 특별법이 제정돼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지만 여순사건의 원혼들은 아직도 잠 못 들고 있다"고 한탄했다.
여순사건이란 말조차 금기어로 여겨지던 시절에 여사연은 여순사건 50주년(1998년) 행사를 준비하면서 지역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으며 그 중심에 이 소장이 있었다. 이 소장이 이끈 여사연은 여순사건의 실체에 다가서기 위해 이후에도 끈질긴 노력을 기울였으나 민간단체 산하 연구소로서 한계를 절감해야 했다.
여순사건 70주년을 맞아 여사연을 비롯한 전남 동부 지역 100여 시민사회단체는 '여순항쟁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를 출범했다. 이를 토대로 '여순항쟁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범시민회의'라는 전국적인 조직체도 갖추었다.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 운동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 여순사건을 가리키는 용어가 여러 가지다.
▲ 법률적인 용어는 '여수·순천 10·19사건'이며 약칭이 여순사건이다. 사건 발발 당시에는 '여수 14연대 반란사건' 또는 '전남반란사건', '여수군란' 등으로 불렸으며 차츰 '여순반란사건'이라는 용어가 자리를 잡았다. 여순반란사건이라는 용어는 여수·순천 지역 주민이 반란의 주체라고 오해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1996년 국사 교과서부터 '여수·순천 10·19사건'이라고 명칭을 바로잡았다. 전남도와 여수시가 제정한 조례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특별법안 명칭도 '여수·순천 10·19사건'이다. 근년 들어 여순사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진보적 지식인 단체는 '여순항쟁'이라고 부른다.
-- 여순사건의 성격은.
▲ 1948년 4월 3일 단독선거·단독정부 수립 반대를 주장하며 제주도에서 일어난 무력충돌이 제주4·3이다. 국방경비대는 제주도 소요사태가 진정되지 않자 급기야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에 진압 명령을 내렸다. 14연대 병사들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군대가 오히려 국민을 진압하고 학살하라는 명령은 부당하다'고 항명하며 무기를 들었다. 당시 군은 이를 군대 내에 침투된 좌익세력의 반란으로 봤다.
무장봉기를 일으킨 14연대의 병력은 2천300명가량이었으며 대부분은 이 지역 출신이었다. 무장봉기는 여수·순천뿐 아니라 광양, 구례, 고흥, 보성 등 전남 동부와 전북·경남지방 일부까지 번졌다. 무장봉기군은 이후 단독선거·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지역 인민위원회와 결합했다. 건국준비위원회가 재편되면서 지역별로 조직된 인민위원회는 좌우 인사를 망라해 구성된 일종의 주민자치기구다. 고흥·보성과 같은 곳은 14연대 무장봉기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인민위원회가 나서 경찰의 무장을 해제하고 봉기군을 맞아들였다. 여순사건은 좌우의 시각으로 볼 일이 아니다. 여순사건의 전개 과정과 배경 등을 살펴보면 이 사건은 일부 좌익계 사병들이 일으킨 단순한 반란이 아니고, '부당한 명령에 맞선 항쟁'이며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 운동'이었음이 분명해진다.
-- '여순사건 특별법'이 왜 필요한가.
▲ 올해가 여순사건이 발생한 지 70년이 되는 해다. 여순사건은 여수와 순천에서 발생한 지역적인 사건이 아니다. 제주4·3과 더불어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정에서 발생한 비극적 사건이다. 현대사의 질곡이다. 여순사건을 계기로 이승만 정부는 계엄령을 시행하고 국가보안법을 제정했다. 모병제는 징병제로 바뀌었다. 역사적 의미가 작지 않다.
여순사건은 제주4·3의 연장 선상에서 봐야 한다. 제주4·3이 없었다면 여순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주4·3은 이미 2000년 1월에 특별법이 제정됐다.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기 위한 법이다. 특별법 제정으로 위령 묘역과 공원이 조성되고 위령탑, 기념관이 세워지는 등 정부 지원으로 다양한 사업이 진행됐다.
반면 여순사건은 진상조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순사건 특별법은 2001년 16대 국회 때 처음 발의됐으며 18대와 19대 국회에서도 각각 발의됐으나 임기만료로 자동폐기 됐다. 20대 국회 들어서는 작년 4월 민주평화당 정인화 의원이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으나 계류 중이다. 여순사건 특별법이 17년째 표류하고 있는 셈이다.
올해는 꼭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전남 동부 지역 시민사회단체 100여 개로 구성된 '여순항쟁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가 지난 8월 출범했다. 지난달에는 이를 토대로 '여순항쟁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범시민회의'라는 전국적인 조직체를 갖추면서 특별법 제정 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이미 여순사건을 다뤘다.
▲ 부분적인 조사에 그쳤을 뿐이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관 수가 절대 부족했다. 나 자신이 이 위원회의 기록정보관과 조사국장을 역임해 조사과정을 잘 아는 편이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06년 4월부터 2010년 6월까지 4년 2개월 동안 활동한 한시조직이다. 위원회의 전체 조사위원은 200~240명이었는데 이중 여순사건을 담당한 인원은 가장 많을 때도 5명에 불과했다.
위원회가 출범 초기에는 여순사건 희생자 전체를 직권으로 전수조사할 계획을 세웠다. 전남도가 여순사건이 발발한 1948년 10월 19일부터 이듬해 10월까지 1년간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여수·순천을 비롯한 전남 동부 지역의 민간인 희생자 수는 1만1천131명이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위원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애초 계획대로 전체를 조사하지 못하고 이들 희생자 가운데 유족들의 신청사건 860여 건만 다룰 수밖에 없었다. 희생자 인원을 기준으로 할 때 12분의 1도 안 되는 숫자다.
조사 대상 지역도 여수와 순천이 중심이었다. 전남도 전체와 전북 남부, 경상도 일부까지 여순사건과 관련된 희생자가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으므로 이들 지역을 모두 조사해야 한다. 조사 대상 시기 역시 여순사건 발생 때부터 한국전쟁 시기인 9·28 수복일(1950년 9월 28)까지로 정했다. 제대로 조사하려면 시기를 지리산의 빨치산이 모두 토벌됐던 1954년까지 늘려야 한다. 여순사건에 가담한 일부 군인들이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됐기 때문이다.
-- 국방부는 여순사건을 어떻게 보는가.
▲ 1960년 4·19가 일어난 이후 여순사건 유족들은 지역별로 유족회를 만들어 희생자 유골 발굴에 나서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고소·고발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이듬해 5·16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군부는 유족회를 탄압해 진상규명 활동이 좌절되고 말았다.
진실화해위원회의 보고서가 나온 이후에야 국방부는 과거와 달리 전향적 자세를 보였다. 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여순사건 63주년에는 당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이 지역 부대장이 대독한 추모사를 통해 유족과 시민들에게 사과했다.
여사연은 지난 5월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에 대한 국방부의 입장을 묻는 서면 질의를 했다. 국방부는 "여순사건에 대한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존중하며, 과거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 이영일 소장은 사회·노동운동가로 일해오다 1990년대 초반부터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 차원에서 여순사건을 집중적으로 추적해왔다. 이 소장은 진실화해위원회(2006~2010년)에 참여해 기록정보관과 조사국장을 역임했다. 현재 '여순항쟁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위원장, '여순항쟁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범시민회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여수지역 시민사회단체가 1995년에 공동으로 설립한 여사연은 '여순사건 실태조사보고서'(1·2·3집)를 시작으로 '여순사건 논문집', '여순사건 유적지 답사 자료집', '여순사건과 대한민국의 형성', '여순사건과 한국군', '다시 쓰는 여순사건 보고서' 등 다양하게 여순사건을 조명한 자료집을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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