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일기는 처절한 고통의 상징"…제주 관함식 日 함정 게양 반대

입력 2018-10-02 11:11
수정 2018-10-04 16:31
"욱일기는 처절한 고통의 상징"…제주 관함식 日 함정 게양 반대

"일본 군국주의 욱일기 온다면 땅속에 묻힌 징용자들 슬퍼할 것"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욱일기를 보면 지금도 놀라고 일본강점기 강제징용 당시 고통이 떠오른다."

일제강점기 남양군도, 칼·총으로 무장한 일본군 해군부대에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욱일기)가 걸렸다.

욱일기는 당시 20대의 조선인 강제징용자 박창호(97) 씨에겐 공포와 동시에 처절한 고통의 상징이었다.

제주시 애월읍 출신의 박씨는 1942년 20살 나이에 남양군도로 끌려가 3년 6개월간 강제노역을 당했다. 당시 고된 노역으로 몸이 상하거나 식량 배급이 안 돼 아무 소리 못 하고 굶어 죽어가는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이 수두룩했다.



일제가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하고 욱일기를 더는 마주하지 않아도 된 것은 그에게는 강제노역이 끝나고 자유의 몸이 됐다는 의미였다.

현재 아흔이 넘은 그는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욱일기를 단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이 제주 국제관함식 참석차 제주에 온다는 이야기에 그는 땅이 꺼질 듯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러면서 이내 단호한 목소리로 "그거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욱일기를 우리나라에 가져와서도 안 되고 내걸어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듯 말했다.

이어 "일제가 36년간 우리나라를 짓밟고 많은 우리 국민을 전쟁터로 내몰고 강제로 징용살이를 살게 했는데 지금껏 사과 한마디 없다"며 울분을 토했다.



제주시 월평동에 사는 강영일(92)씨도 일제강점기인 1945년 상반기 18세 때 제주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공항)에서 전투기 비행장 건설에 강제로 투입됐다.

일본군은 패전의 기색이 역력해지자 1945년 3월 20일 본토 수호를 위한 '결호작전 준비요강'에 따라 북부 홋카이도의 '결1호 작전'부터 남부 규슈의 '결6호 작전'까지 세웠다. 그리고 유일하게 본토가 아닌 제주를 주 무대로 상정한 '결7호 작전'을 수립했다.

이에 따라 제주에서도 전투기 비행장과 갱도 진지, 고사포 진지 등 각종 전투시설 건설이 시작됐고, 수많은 도민이 강제노역에 동원됐다.

국가기록원에는 제주도민 8천715명이 이런 노역에 강제동원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하루에 제주 섬 곳곳에서 수백 명씩 동원된 것을 고려하면 연인원은 5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강씨는 "일본군이 전쟁터로 만들려던 제주에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기가 다시 오게 된다면 매우 불행한 일"이라며 "제주 땅속에 묻혀 있는 숨진 징용자들도 슬퍼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해군기지(민군복합형관광미항)에서는 10∼14일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이 열린다.

관함식은 국가원수가 군함을 한곳에 집결시켜 전투태세와 군기를 점검하는 해상 사열식이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1954년 발족 당시부터 군함의 깃발로 욱일기를 쓰고 있다. 욱일기는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일본은 자국 주권을 들어 제주 관함식 해상사열에 참가하는 함정에 이 욱일기를 게양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ko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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