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베를린자유대 이은정 "북한서 반미박물관도 구경못하게 해"
김일성대와 MOU·서원연구차 방북…"반미 플래카드 보기 어려워"
"구체적인 분야에서 차분하게 남북 간 학술교류 필요"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황해도 신천을 지나는 길에 일행이 반미의 상징적인 장소인 신천박물관에 들르자고 했는데 거절당했습니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베를린자유대 이은정 교수가 1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북미 관계의 변화를 보여주는 단면으로 소개한 일화다.
베를린자유대학 한국학과장 겸 한국학연구소장인 이은정 교수는 베를린자유대학과 김일성종합대학 간의 교류협력 의정서 체결과 서원 연구를 위해 지난달 22∼29일 북한을 찾았다. 베를린자유대 한국학연구소 연구원들도 함께 방북했다.
2012년에도 독일 연방하원 의원들과 함께 평양을 방문한 이 교수는 예전과 달리 평양과 개성 등에서 반미구호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전에는 반미구호가 흔히 보였는데, 지금은 경제개발과 관련해 사기를 북돋우는 플래카드만 가득했어요"
북한 TV와 신문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에서 함께 있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었단다.
"연구단을 대하는 태도가 굉장히 부드러웠습니다. 문 대통령이 다녀간 것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독일에서는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평양도 2012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 발전했단다. 이 교수는 "평양에서 만난 북한 교수들한테 '평양이 예전보다 많이 변했다'고 하니, '매일 좋아진다'라고 답변했다"고 소개했다.
이 교수는 김일성종합대학도 베를린자유대학과의 교류협력에 대한 의지를 상당히 보였다고 설명했다.
"태형철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이 '도이치강좌(독일학과)를 강화할 생각으로 도이치강좌와의 협력을 잘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어요"
이 교수와 연구단은 이번 방북에서 평양과 해주, 개성 등을 방문했다. 평양에서는 교류협력식에 참석하고 같은 시기에 김일성자유대학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했다.
국제학술대회에는 중국과 러시아, 영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독일 등 10여 개 국가에서 학자들이 참여했다. 정치, 경제, 자연과학, 의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로 나눠 열렸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이 교수가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본 발표는 젊은 김일성종합대학 교수가 발표한 북한의 일기예측 속담과 이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찾아보는 연구였다.
그는 기회만 된다면 독일에서도 같은 발표가 이뤄지고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연구가 이뤄지면 상당히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 것 같다고 흥미로워했다.
이 교수와 연구팀은 해주와 개성에서 각각 소현서원과 숭양서원을 찾았다. 조선시대 유교사에서 중요한 서원으로 상당히 보존이 잘돼 있다고 한다.
김일성종합대학과 베를린자유대 간의 공식적인 교류협력 관계로 한국학연구소의 서원 연구도 탄력을 받게 됐다.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서원과 관련한 고문헌 리스트를 제공했습니다. 지금 북한에 남아있는 연구팀이 상당히 귀한 자료인 고문헌을 촬영하는 등 자료를 수집하고 있어요"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앞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큰 남북한 간의 학술 교류에 대해서도 조언을 했다.
"베를린자유대학의 한국학연구소는 오랜 기간 김일성종합대학 측과 왕래를 해오면서 관계를 쌓아왔기 때문에 학문 교류가 가능하게 됐습니다. 남북 간 학술교류가 가능하게 되더라도 성급하고 광범위하게 생각하지 말고 북한 측도 관심이 있는 구체적인 분야에서 차분하게 교류를 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 교수는 독일 괴팅겐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2008년부터 베를린자유대 한국학과 교수로 재직해왔으며, 유럽 한림원 정회원이자 베를린-브란덴부르크학술원(옛 프러시아 왕립학술원) 정회원이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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