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 오른 남북 정상 상상하며 그렸는데 꿈이 현실 됐네요"
화가 이종구, 학고재 개인전 '광장_봄이 오다'서 신작 33점 공개
"작업 출발은 세월호…그림으로라도 아이들 부활시키고 싶었다"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남북 정상이 백두산에 올라 두 손을 맞잡은 것이 지난 20일이다. 그로부터 여드레 뒤인 28일, 이종구 개인전이 개막한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는 백두의 두 정상을 담은 거대한 그림이 걸렸다.
일주일 남짓한 시간에 해낼 수 없는 작업인 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작가에게 묻는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을 하는 모습에 크게 감동한 뒤 시작한 그림이에요. 두 정상이 백두에 올라 한라까지 넘어가는 건 어떨까 상상하면서 그렸는데, 꿈이 현실이 됐네요."
작가 자신도 신기한지, 베레모 아래 숨겨진 두 눈이 슬쩍 웃는다. '봄이 왔다2'는 함께 걸린 '봄이 왔다1' '봄이 왔다3'과 함께 4·27 남북정상회담의 중요 장면을 생생하게 담은 연작이다.
농촌 화가. 이종구를 오랫동안 수식한 말이다.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오지리에서 농사꾼 아들로 태어난 그는 땅과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치열하게, 그리고 우직하게 그렸다. 2005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을 때, 김윤수 당시 관장은 '이종구는 농민들이 어떻게 거덜 나고, 희망 없는 삶을 이어가고 있는지를 그린 거의 유일한 화가'라고 칭했다. 이번 전시에도 누렁소나 농민을 담은 황톳빛 작품이 몇 점 나왔다.
제목 '광장_봄이 오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신작 33점을 내놓은 이번 전시 주인공은 농촌이 아닌, 지난 수년간 광장과 한반도에 몰아친 새로운 바람이다.
4년 전 위암 수술 후 기력이 예전 같지 못한 작가는 세월호 작업을 더는 미룰 수 없는 숙제로 받아들였다. "모든 것의 출발은 세월호에요. 세월호 사건 이후 결국 광장에는 촛불이 밝혀졌고 잘못된 권력이 바뀌었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온 것 아닌가요."
10점의 '학교 가자' 연작은 안산 단원고 아이들의 1학년 시절 단체 사진을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작가는 인천 작업실에서 마음 편히 작업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작년 여름 진도 인근 임하도 폐교에서 이 작업을 완성했다. 운동복을 입고 밝게 웃고 까부는 아이들 모습 앞에 태연해지기 어렵다.
작가는 "기록이 있는데 왜 굳이 그림을 그리냐고 묻는 이도 있을 것"이라면서 "무모한 재현일 수도 있겠지만 그림으로라도 아이들을 인양하고 부활시키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전시장 안쪽에는 '광장-16,894,280개의 촛불' 등 광화문 촛불을 다룬 작업이 전시됐다.
실제 광화문에 나붙은 스티커와 포스터 등을 작가가 수거해 콜라주 형식으로 붙인 점이 독특하다. 촛불 시위에 참여한 자신을 그린 그림은 시민 이종구와 작가 이종구가 별개가 아님을 드러낸다.
작가는 작업 노트에서 "이번 작업은 동시대 작가로서 나의 현실 인식과 역사의식, 특히 분단을 넘어 평화로 가는 우리 민족의 현실 앞에서 어떠한 미학적 완결성보다 시대의 서사와 내용을 더 중시하고 강조한 측면이 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거듭 우리 시대의 역사와 현실과 현장을 기록하는 증언하는 작가로서 역할을 다 하고자 한다"고 다짐했다.
'광장_봄이 오다' 전시는 10월 21일까지. 문의 ☎ 02-720-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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