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철 "심장은 타인의 슬픔 때문에 멈추지 않는다"

입력 2018-09-29 06:03
신형철 "심장은 타인의 슬픔 때문에 멈추지 않는다"

문학비평·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심장은 언제나 제 주인만을 위해 뛰고, 계속 뛰기 위해서만 뛴다. 타인의 몸속에서 뛸 수 없고 타인의 슬픔 때문에 멈추지도 않는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라면 인간은 자신이 자신에게 한계다. 그러나 이 한계를 인정하되 긍정하지는 못하겠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슬퍼할 줄 아는 생명이기도 하니까."

문학평론계 스타로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신형철(42) 조선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새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한겨레출판)을 펴냈다. 그는 이 책을 내며 새로 쓴 '당신의 지겨운 슬픔'이란 글에서 타인의 슬픔에 온전히 공감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명징하고 유려한 문장들로 표현한다.

그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영화 '킬링 디어'에서 본 인간조건의 비극성을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바로 결함"이라고 정리하며 "그러므로 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라고 단언했다.

이어 "이 역설을 인정할 때 나는 불편해지고 불우해진다. 그러나 인정은 거기서 멈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하는 것이다. '킬링 디어'의 첫 장면을 가득 채우는 것은 뛰고 있는 심장이다. 이 장면은 말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심장이다"라고 정의했다.

그는 "한계를 슬퍼하면서, 그 슬픔의 힘으로, 타인의 슬픔을 향해 가려고 노력하니까. 그럴 때 인간은 심장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슬픔을 공부하는 심장이다.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라고 반문한다.

"이기적이기도 싫고 그렇다고 위선적이기도 싫지만, 자주 둘 다가 되고 마는 심장의 비참. 이 비참에 진저리치면서 나는 오늘도 당신의 슬픔을 공부한다. 그래서 슬픔에 대한 공부는, 슬픈 공부다." (28쪽)



이 책은 그의 첫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2011) 이후 7년여간 발표한 글 중 짧은 것을 모아 다듬고 묶은 것이다.

그는 책머리에 "7, 8년 동안의 글을 모아보니 슬픔에 대한 것들이 많았다"며 "슬픔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 것은 2014년 4월 16일 때문이기도 하고 2017년 1월 23일 때문이기도 하다. 전자는 세월호가 침몰한 공적인 날짜이고 후자는 아내가 수술을 받은 사적인 날짜다.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일들을 나란히 놓는 것이 죄스럽지만 내게는 분리하기 어려운 두 번의 일이다"라고 했다.

이어 슬픈 일들을 겪고 지켜보면서도 당사자들보다 슬픔에서 더 빨리 빠져나올 수 있었던 사실을 꼬집어 "이런 일들을 겪고 나는 무참해져서 이제부터 내 알량한 문학 공부는 슬픔에 대한 공부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느낌의 공동체'에서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으로 넘어왔다"고 털어놨다.

이 책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눠 '슬픔에 대한 공부', '삶이 진실에 베일 때', '그래도 우리의 나날', '시는 없으면 안 되는가', '넙치의 온전함에 대하여'라는 소제목을 달았다.

부록으로 실은 '노벨라 베스트 6', '추천사 자선 베스트 10', '인생의 책 베스트 5'도 저자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관심 있게 볼 만한 내용이다.

저자가 "이 소설들은 거의 완전무결한 축복이다"라고 상찬한 중편·경장편 소설 여섯 편(노벨라 베스트 6)으로는 마루야마 겐지 '달에 울다',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다다를 수 없는 나라', 아고타 크리스토프 '어제', 배수아 '철수', 파스칼 키냐르 '로마의 테라스', 황정은 '백의 그림자'가 꼽혔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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