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이 최고] 간이식 위험 '윌슨병'…"보인자 부모 유전력 25%"
간에 구리 과다축적 질환…증상 없다가 5세 이후 진단 많아
원인 모를 간염증상·손떨림·각막 이상…조기 유전자검사 필요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98년 3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간 이식 수술이 시행됐다. 당시 14살의 어린 나이였던 이모양이 수술대에 오른 건 몸에 구리가 쌓이는 '윌슨병'이라는 유전성 질환 때문이었다.
원래 구리는 사람의 몸속에서 철분의 흡수 및 이용을 돕고 세포의 산화 손상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체내 요구량을 넘어서면 우리 몸의 13번 염색체에 있는 ATP7B 유전자가 구리와 세룰로플라스민(ceruloplasmin)의 결합을 도와 구리를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ATP7B 유전자에 결손이 생겨 구리가 제대로 배출되지 않고 간과 뇌신경, 각막, 신장 등에 쌓이면 윌슨병이 발병한다.
1912년 이 질환에 따른 증상을 처음으로 보고한 영국의 신경학자 사무엘 알렉산터 윌슨(Samuel Alexander Kinnier Wilson)의 이름을 따 윌슨병으로 명명됐다.
윌슨병은 전세계적으로 3만명당 1명꼴의 빈도로 발생하는 희귀질환이다. 대개 15세 이전에는 간질환, 15세 이후로는 신경질환으로 증상이 나타난다.
이 중에서도 간은 윌슨병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는 장기로, 간에 구리가 쌓이면 처음에는 간 효소치가 증가하고 간이 비대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초기에는 체감할 수 있는 증상이 없어서 눈치채지 못하다가 보통 5세가 지난 후 윌슨병 진단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바로 치료를 시작하지 않으면 간경변증을 동반한 진행성의 만성 간염, 간경화 등이 발생할 수 있으며 최악에는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간의 축적한계를 넘어선 구리가 혈류로 흘러나와 대뇌 기저핵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뇌 기저핵이 손상되면 구음장애, 삼킴장애, 무표정한 얼굴, 비정상적인 눈의 움직임, 불안정한 보행, 무도증(의지와 상관없이 불규칙하게 움찔거리는 운동이 신체 여러 부분에서 일어나는 현상) 등의 신경계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각막의 경우 가장자리에 구리가 침착되면서 황갈색 띠가 나타나는 각막환(Kayser-Fleischer ring)이 관찰되면 윌슨병이 나타날 가능성이 커지고, 백내장이 유발될 수도 있다.
또 뇌의 구리 중독 증상으로 과잉불안 및 공포, 감정조절의 어려움, 조울증, 집중력 저하, 성격 변화와 같은 정신과적 이상이 발병할 수 있으므로 추가적인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
문제는 이 질환이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하고, 상염색체 열성으로 유전된다는 점이다. 윌슨병의 유전형질을 가진 보인자율은 50명 내지 100명 중 1명꼴로 추정되며, 백인보다 아시아인에게 더 흔한 것으로 알려진다.
따라서 윌슨병은 조기에 질환을 발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보통 ATP7B 유전자 검사를 하면 윌슨병 발현 유전자 부위가 70% 이상 검출된다. 검진기관에서 혈액검사를 했다면 따로 혈액을 채취할 필요 없이 기존 검사에서 사용하고 남은 혈액만으로 검사할 수 있기 때문에 부담도 적은 편이다. 가족력이 의심되는 상황인 경우 신생아 시기에 유전자 검사로 미리 검진을 받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이외에도 혈장의 세룰로플라스민 농도, 소변으로 배설되는 구리의 양, 간조직 내 구리의 양을 측정하는 검사법 등이 있지만, 한국인에게는 비교적 흔한 유전 질환인 만큼 증상이 나타나기 전 유전자 검사가 가장 유용한 것으로 꼽힌다.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 소아소화기영양과 오석희 교수는 "만약 윌슨병으로 진단받은 환자가 있다면 형제들에 대한 진단 검사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면서 "급속히 간부전으로 진행한 경우 간이식을 하지 않으면 대개 사망하는 만큼 치료 초기부터 간이식에 대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검사 결과 질환 발현 위험성이 높게 나타났다면 적절한 의학적 치료와 특수 식이법 등으로 예방할 수 있다.
윌슨병 환자에게는 구리 영양소를 조절하는 식사가 필수적이다. 구리가 다량 함유된 버섯, 코코아, 간, 어패류, 견과류, 초콜릿 등의 식품을 제한하는 식이요법은 구리 축적을 막아주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윌슨병 환자라고 해서 구리 섭취 제한이 무조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구리의 결핍으로 철분 이용률 감소 및 적혈구 합성 저하가 생기면 빈혈, 백혈구감소증, 골다공증 등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환자의 상황에 맞춰 섭취 조절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리흡수억제제, 구리배출유도제 등 구리의 배출을 도와주는 약을 지속적으로 섭취하는 것도 증상의 경과를 늦추는 방법이다. 대표적인 구리배출 유도제로는 페니실라민과 트리엔틴이 있으며 증상의 경중에 따라 진행된다. 약물치료는 건강이 완전히 회복된 후에도 평생 지속해야 하며, 중단 시 1∼2년 내 영구적인 간손상이 초래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GC녹십자지놈 최종문 전문의는 "윌슨병 보인자는 당장 증상이 나타나지는 않지만 미래에 같은 보인자를 가진 배우자와 자녀를 낳게 될 경우 해당 자녀가 윌슨병일 확률이 25%에 달한다"면서 "만약 청소년기의 자녀가 원인을 알 수 없는 간염증상을 보이거나 손 떨림 등의 신경, 행동장애를 보인다면 검사를 받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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