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에 '핫한' 공연장?…현대미술관서 즐기는 다원예술
서울관, 10월 3일까지 남화연·로이스 응 등 아시아 작가 5명 작업 소개
각국서 순회공연…"서울관, 다원예술 선도적 플랫폼"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짙은 어둠 속 현란한 색덩어리들이 차고 이지러진다. 몽롱함 속에서 눈이 감겨들어간다 싶은 순간, 이미지는 사라지고 투명 피라미드 구조물에서 한 남자가 튀어나온다. 홍콩 작가 로이스 응이다.
27일 15분의 '환각'을 맛본 곳은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 7전시실이었다.
로이스 응은 20세기 아시아의 전설적인 마약왕 올리브 양을 주인공으로 한 '조미아의 여왕' 일부를 이날 언론에 공개했다. 모든 것이 모호했던 올리브 양의 삶은 근대 국가에 편입되기를 거부한 이들을 대표한다. 피라미드 구조물과 영상 홀로그램, 퍼포머의 신체가 어우러진 무대는 관객을 동남아의 미로 같은 역사로 끌고 간다.
'조미아의 여왕'은 28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아시아 포커스'라는 이름 아래 진행될 작품 중 하나다.
동시대 미술은 무용이나 연극, 사운드, 영상 등 다양한 장르와 손잡고 무대를 무한히 넓히는 중이다. 이러한 '다원예술'이 호응을 얻으면서 그림이나 조각, 설치 전시장으로만 인식되던 미술관 벽도 허물어지고 있다.
현대미술관 또한 지난해부터 서울관을 중심으로 다양한 다원예술 프로젝트를 시도 중이다. 아시아에서 작가들이 신작을 만들어 이를 세계에 선보이게끔 지원하는 '아시아 포커스' 또한 개중 하나다.
올해 '아시아 포커스'는 현대미술관이 독일 캄프나겔 극장,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 아트, 싱가포르국제예술페스티벌 등 10개 해외기관과 함께 기획한 다섯 작가 작품을 선보인다. 김성희 계원예대 교수가 감독을 맡았다.
강승완 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27일 간담회에서 "현대미술관이 공연 프로그램 기획·제작·유통에 참여한다는 건 매우 의미 있다"라면서 "다원예술 인프라가 매우 빈약한 아시아에서 서울관이 선도적인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호추니엔(싱가포르)이 선보이는 '의문의 라이텍'은 삼중 스파이였던 말레이시아 공산당 총서기 라이텍의 삶을 추적한다. 자전적 독백으로 시작해 뒤엉키는 대화는 '배신의 세기'에 가면을 계속 바꿔 써야 했던 동남아시아 초상이기도 하다.
고이즈미 메이로(일본)는 VR 신작 '희생'에서 이라크 전쟁에 참여한 한 이라크인 일상에서 출발해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어디까지 공감할 수 있는지, 그 한계는 어디인지 등등의 질문이 이어진다.
태양 주위를 도는 핼리 혜성 움직임과 시간을 지금 이 순간 느껴 보려는 남화연 '궤도연구', 현실과 꿈, 귀신 이야기와 사적인 기억을 엮어낸 다이첸리안(중국) '동에서 온 보랏빛 상서로운 구름, 함곡관에 가득하네'도 감상한다.
공연인지 미술인지 장르를 엄격히 따질 필요 없이, 새로운 시각예술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만 인식하면서 봐도 충분한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은 현대미술관을 거쳐 외국의 공동제작 기관에서 순회공연한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아시아 예술 담론은 유럽에서 만들어지고, 유럽인들에 의해 쓰였다"라면서 "'아시아 포커스'를 통해 아시아 작가들도 스스로 목소리를 낼 기회를 얻게 됐다"고 강조했다.
'아시아 포커스' 프로그램은 전석 사전예약제로 운영된다. 자세한 내용은 현대미술관 홈페이지(www.mmca.go.kr)나 전화(☎02-3701-9500)로 확인하면 된다.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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