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10년 만에 '치메리카'에서 '경제냉전'으로"
"무역전쟁 트럼프 혼자 주도한 것 아냐…미 안보·경제 복합체가 배후"
WSJ "단기적으론 중국이 패자, 미 고립주의 치달으면 결과 알 수 없어"
(서울=연합뉴스) 김현재 기자 = 미국과 중국 경제의 상호의존성이 커지면서 등장한 단어가 '치메리카(Chimerica)'였다. 중국(China)과 미국(America)을 합친 조어다.
그러나 이 신조어가 나온 지 불과 10년 만에 '경제적 냉전(Economic Cold War)이란 말이 국제경제 전문가들의 입에서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 "일부 관측통들은 (중국 제품에 관세 폭탄을 퍼붓는) 미국 정부의 궁극적 목표가 미국과 중국 경제를 영구적으로 분리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미 외교관계위원회의 중국 전문가인 브래드 세처는 "중국도 미국도 더는 치메리카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서 "중국은 기술적 의존을 원하지 않고, 미국은 지속적인 무역 적자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중 고율 관세부과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공식 입장은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을 바꾸기 위한 한시적 조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로서는 고속 경제 발전을 주도해온 자국의 산업 정책을 단번에 끊어버리라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는 형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 적자가 관세 폭탄의 동기라고 말하지만, 중국에 있는 회사들이 관세를 피해 인근 베트남으로 생산 기지를 옮기면 중국과의 무역 적자는 줄어들지 몰라도 베트남과의 무역 적자가 늘어나게 돼 무역 적자 총계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 무역 적자가 무역전쟁의 근본적 이유가 아니라는 얘기다.
중국 컨설팅 회사인 게이브칼 드래고노믹스(Gavekal Dragonomics)의 아서 크뢰버는 "미·중 무역전쟁은 트럼프 대통령 혼자 주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면서 "글로벌 경제, 기술, 지정학적 지배력을 놓고 미국이 중국과 실존적 갈등에 들어섰다고 믿는 미국 내 안보·경제 관리 복합체가 그 배후에 있다"고 주장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소련과 경제적 교류를 거의 하지 않아 미·소 냉전이 무역 분야로까지 확산되지 않았다.
미국과 일본이 한때 무역 갈등을 겪은 적이 있었지만, 군사 동맹이라는 사슬로 인해 양국 관계는 궤도이탈까지는 가지 않았다.
하지만 미·중 관계는 다르다. 양국은 지금 세계 어느 나라보다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얽혀있다.
그러면서 미국은 중국이 사이버 절도, 무역 장벽, 기술이전 강요 등을 통해 단지 경제적 이점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위협하는 막강한 적대 세력으로 성장했다고 믿고 있다.
치메리카라는 조어를 만든 하버드대 니얼 퍼커슨 교수는 2008년 자신의 저서 '돈의 힘-금융의 역사'에서 "세계 면적의 13%. 세계 인구의 14%, 세계 GDP의 3분의 1을 장악하고 있는 치메리카는 세계 경제성장을 주도해온 하나의 경제주체로 봐야 한다"면서도 "만약 중국이 새로운 세력범위를 찾아 떠난다면 치메리카 시대는 종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WSJ는 "관세 장기화는 다국적 기업들의 생산 기지를 중국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압박할 것이며 대중국 투자 매력은 감소할 것"이라면서 "신뢰할만한 기관과 법치제도 하에서 개방되고 투명성을 갖춘 시장을 갖고 있는 미국, 강력한 군사력으로 많은 나라와 동맹을 맺고 있는 미국에 비해 중국은 분명 열세"라고 말했다.
만일 미·중 무역전쟁이 경제적 냉전으로 비화해 세계 많은 나라가 양자택일의 선택을 강요받게 되면 미국 편을 드는 나라가 훨씬 많을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WSJ는 "다국적 기업들이 잘 발달된 인프라와 물류, 거대한 자체 내수 시장을 갖춘 중국 공급망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은 이미 미국의 도움 없이도 아시아 기반의 거래 블록을 구축하고 있고, 제조업과 중간재 무역에서는 미국보다 유럽과 더 많은 거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TS 롬바드의 래리 브레이너드 투자자문역은 "중국이 단기적으로는 패자가 되겠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중국이 자신들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대로 미국 시장 진출이 좌절된 화웨이가 세계 최고의 통신장비 공급업체로 등극한 것이나, 볼보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는 중국의 저장지리홀딩스그룹이 말레이시아 자동차 회사 프로톤을 인수해 동남아와 중동 수출의 기반을 마련한 것이 대표적인 예라는 것이다.
WSJ는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우선주의'로 치달을수록 미국은 더 고립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점증하는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우려해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를 탈퇴하자 TPP에 큰 기대를 걸었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중국과 우호적 경제 관계를 맺기 위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WSJ는 덧붙였다.
kn020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