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김정은' 이름 또박또박 부르며 "감사"…北대사도 경청(종합)
1년전 '北완전파괴' 위협서 급반전…"발언 톤 작년과 달라" 본인도 인정
이란·시리아에 경고…중국·베네수엘라·OPEC도 도마 위에 올려
성과 자화자찬에 청중 '웃음'→트럼프 당황 속 "오케이"→박수·웃음 터져
(뉴욕=연합뉴스) 이귀원 이준서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일반토의 연설에서 북한을 향해 지난해와는 180도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지난해 9월 첫 유엔 연설에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로켓맨'이라고 지칭하며 "미국과 동맹을 방어해야 한다면 우리는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라며 초강경 발언을 쏟아냈지만, 1년 만에 다시 오른 무대에서는 김 위원장에 대한 칭찬을 이어간 것이다.
지난 6월 싱가포르에서 김 위원장과의 첫 북미정상회담 이후 이어지고 있는 북미 간 외교적 협상 국면이 반영된 것으로 우호적 관계를 통해 김 위원장의 비핵화를 끌어내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북한의) 미사일과 로켓이 더는 사방에서 날아다니지 않고 있다"면서 "김 위원장이 취한 조치와 그의 용기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특히 김 위원장의 이름을 언급할 때는 의식적으로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발음해 눈길을 끌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유화적 발언에 북한 측 반응도 확연히 달랐다.
최근 부임한 김성 유엔주재 북한 대사는 총회장 뒤쪽 좌석에 앉아 진중한 표정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청취했다. 옆에 앉은 북측 실무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받아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완전 파괴' 발언으로 위협한 지난해에는 당시 자성남 북한 대사가 자리에 앉아있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에 나설 무렵 미리 자리를 박차고 나가며 사실상 연설을 보이콧했다. 실무자만 남아 연설을 기록했다.
북한에 대해 언급한 시간도 위협과 경고가 넘쳐나던 지난해는 5분을 훌쩍 넘겼으나 올해는 수위가 낮아지면서 2분 남짓으로 짧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요 고비마다 남북정상회담을 열어 협상 동력을 제공한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감사를 표시했다.
올해 연설의 대북 메시지가 지난해와는 사뭇 달랐다는 점은 트럼프 대통령도 스스로 인정했다.
트럼프 "김정은의 용기와 조치에 감사"…비핵화까지 제재는 계속 / 연합뉴스 (Yonhapnews)
그는 유엔총회 연설 후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오찬을 하며 "작년 연설에서 북한에 대한 톤(어조)은 지금과는 약간 달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 문제에) 엄청난 진전이 있었다. '누가 알겠느냐'라는 말이 있듯이, 나는 여러분이 아주 훌륭한 결과를 보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비핵화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또한 "전쟁은 아니더라도 무역분쟁과 각종 충돌 등 많은 문제가 내년에는 사라지길 바란다"고 덕담했다.
30분간 이어진 기조연설에서 북한을 향한 공격이 멈춘 것과 달리 이란을 향한 십자포화는 올해도 계속됐다. 이란을 '부패한 독재'로 지칭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지도자들은 혼란과 죽음, 파괴의 씨를 뿌렸다"면서 "이란이 침략적 행위를 계속하는 한 우리는 모든 국가가 이란 정권을 고립시킬 것을 요청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에는 "화학무기를 배치하면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도 작년에 이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렸다.
무역전쟁이 최고조에 달한 중국, 고유가로 미국과 갈등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도 트럼프 대통령의 예봉을 피하지 못했다. 다만 러시아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자화자찬'은 유엔 연설에서도 어김없이 나왔다.
연설 초반 트럼프 행정부가 역대 어느 정부보다 더 많은 것을 이뤘다며 경제 성장 등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자 총회장 곳곳에서는 '조용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사실"이라며 "이런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도 오케이(괜찮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방청석에서는 더 큰 웃음과 함께 박수가 쏟아다.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순간 당황한 것으로 보였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이날 미셰우 테메르 브라질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로 연설할 예정이었으나 레닌 모레노 에콰도르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로 연단에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각한데 따른 것인지, 아니면 갑자기 연설순서를 변경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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