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 모범' 獨 명성 퇴색…잇단 내홍속 극우당만 부상
난민정책 갈등 이어 정보기관 수장 인사 논란으로 분열
대연정 대안으로 소수정부론 '솔솔'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2차 세계대전 이후 안정적으로 유지한 독일의 연립정부 통치가 메르켈 4기 내각 출범 이후 위기를 맞았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지난해 9월 총선에서 승리한 뒤 우여곡절 끝에 지난 3월 중도우파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과 중도좌파 사회민주당 간의 대연정을 형성했지만, 내부 파열음이 끊이지 않는다.
6월에는 난민정책을 둘러싼 이견으로 극심한 내홍을 빚으며 붕괴 직전까지 갔다가 극적으로 타협을 이뤘다.
최근에는 정보당국인 헌법수호청(BfV) 수장의 인사 문제로 다시 한 번 불협화음을 냈다.
한스-게오르그 마센 헌법수호청장은 지난달 옛 동독 도시 켐니츠에서 극우세력의 폭력시위 사태 당시 폭력 행위가 담긴 영상의 진위를 의심하는 발언을 해 논란에 휩싸였다.
더구나 극우성향의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의원들에게 정보 문건을 넘겼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녹색당과 좌파당 등 야당뿐만 아니라 기민당과 사민당은 마센 청장의 해임을 요구하며 들고 일어났다.
결국,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마센 청장을 해임하기로 했으나, 기사당 대표로 보수 노선을 강화한 호르스트 제호퍼 내무장관이 마센 청장을 감싸고 돌며 내무차관에 임명하기로 했다.
그러나 내무차관은 BfV 청장보다 더 고위직이고 급여도 많아 오히려 '영전'했다는 비판이 정치권 안팎에서 거셌다.
내무차관 임명을 묵인한 사민당의 안드레아 날레스 대표도 당내 비판으로 궁지에 몰리면서 대연정 3당은 마센 청장의 인사 문제를 다시 논의하기 시작했다.
결국, 메르켈 총리와 제호퍼 장관, 날레스 대표는 23일 회의를 열어 마센 청장의 내무차관 임명을 취소하고 내무부의 특별 고문역을 맡기는 것으로 갈등을 봉합했다.
이 과정에서 기민·기사 연합과 사민당은 모두 상처만 입고 극우 AfD가 반사이익을 얻었다.
마세 청장의 내무차관 임명 이후 공영방송 ARD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기민·기사 연합의 지지율은 28%, 사민당의 지지율은 17%로 각각 1% 포인트 떨어졌다.
반면, AfD는 2% 포인트 뛰어오른 18%로 ARD 여론조사 결과 처음으로 2위로 부상했다.
대연정의 이 같은 난맥상은 내달 기사당의 '텃밭'인 바이에른 주 지방선거와 연결돼 있다.
제호퍼 장관이 지난 6월 난민 강경책을 내세운 것도 바이에른 주의 보수적 유권자에게 구애를 보내기 위해서였다. '마센 구하기'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호퍼 장관의 노림수는 대연정 내분으로 이어졌고 지지층에 불안감을 일으키며 역효과를 내고 있다.
독일 언론에서는 현재 상황이 이어진다면 바이에른 주에서 기사당이 '빛바랜 승리'를 거두고 AfD가 2위에 오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애초 총선 참패 이후 제1 야당의 길을 선언했다가 다시 연정에 참여한 사민당도 지지율 하락세가 이어지며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독일 언론에선 대연정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이 다시 일고 있다.
경제신문 한데스블라트는 최근 사설에서 "연정이 붕괴한다면 (과반 의석 미달의) 소수정부도 선택지가 될 수 있다"면서 "바이마르 공화국의 혼란상 때문에 소수정부에 거부감이 있지만, 지금은 민주주의가 성숙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소수정부는 윈스턴 처칠 같이 명쾌한 비전과 대담한 언어를 가지고 반대파를 공감시킬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라며 "메르켈 총리는 지난 13년간의 (국정운영) 솜씨에도 불구하고 그런 지도자는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메르켈 총리는 마센 청장의 인사 논란에 따른 후유증을 수습하는데 나섰다.
메르켈 총리는 24일 기자회견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어 유감"이라며 실책을 인정하면서도 "도심에서 디젤 차량의 운행 금지를 피하는 방법 등 시민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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