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적이고 신선하지만 어렵고 불편한 '너는 여기에 없었다'

입력 2018-09-24 07:02
몽환적이고 신선하지만 어렵고 불편한 '너는 여기에 없었다'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매년 두 차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 패션쇼는 그해 세계 패션의 트렌드를 제시하는 자리다.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가 자존심을 걸고 만들어낸 출품작은 옷이라기보다 예술 작품에 가깝다. 당연히 입이 벌어질 정도로 멋지지만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이 익숙한 일반인이 소화하기에는 낯설고 불편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제70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거머쥔 린 램지 감독의 '너는 여기에 없었다'(You Were Never Really Here)는 예술품에 가까윤 패션쇼 의류를 연상케 한다.

신선하며 몽환적이지만 할리우드가 대표하는 기존 영화 문법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어렵고 불편하게 느껴질 듯도 하다.

낯선 카메라 구도와 장면 전환, 절제된 대사와 등장인물 심리를 파고드는 절묘한 연출은 분명 신선함을 선사하지만, 결코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아버지에게 학대당한 경험과 참전 트라우마로 늘 자살을 꿈꾸는 청부업자 '조'(호아킨 피닉스 분)는 상원의원 '보토'의 딸 '니나'(예카테리나 삼소노프 분)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아동 성매매현장에서 니나를 찾아낸 조는 망치 하나로 성매매조직 일당을 때려눕히고 니나를 구해내지만, TV에서 의뢰인인 보토가 투신자살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일이 잘못됐음을 직감한다.

서사 자체는 복잡할 것이 없다. 의뢰인 딸을 구해왔더니 의뢰인은 자살했고 딸은 다시 빼앗긴다. 주인공은 배후에 도사린 진짜 악당을 향해 걸어가 다시 딸을 되찾아온다.

어찌 보면 흔한 할리우드 액션 영화 스토리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영국 영화의 미래'라던가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는 램지 감독은 단순한 스토리에 영상미와 철학적 사유를 접목해 깊이를 더하고 여운을 끌어낸다.

조가 망치 하나만 들고 성매매 업소를 습격해 니나를 구해내는 시퀀스는 예술적이다. 할리우드라면 틀림없이 조의 활극으로 묘사했을 장면을 흑백의 CCTV 화면을 적절히 활용해 절제미가 돋보이는 영상으로 빚어냈다.



조가 자기 어머니를 살해한 범인을 처치하는 시퀀스는 기이할 정도다. 죽어가는 범인의 손을 잡고 함께 바닥에 누워 노래를 흥얼거리는 조의 모습은 묘하게 섬뜩하다.

엔딩에서 조와 니나가 나누는 대화 역시 인상적이다. "우리 어디로 가요?"라고 묻는 니나에게 조는 "네가 원하는 곳으로. 그게 어디야?"라고 되묻는다. "모르겠어요"라고 답하는 니나에게 조 역시 "나도 모르겠다"라고 답한다.

갈 곳을 잃은 조의 선택은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장면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주변 인물 표정과 흥겨운 음악은 관객을 더욱 혼란에 빠뜨린다. 그래서 "일어나요, 조"라고 속삭이는 니나의 목소리는 마치 꿈속을 헤집고 들어오는 듯하다.

호아킨 피닉스는 램지 감독이 시나리오 구상 단계부터 염두에 둔 배우였으며 이 작품으로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는 최근 DC 유니버스를 대표하는 악당 '조커' 역을 맡기로 해 전 세계 영화팬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다. 10월 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kind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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