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주년 크라잉넛 "록이 죽었다고? 지금이 진짜 시작"
"남북 음악교류 되면 어디서든 노래할 것"
"홍대 젠트리피케이션 안타까워…가끔 이방인 된 기분"
10월 12일 정규 8집 '리모델링' 발매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1998년 '말 달리자'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던 시절부터 밴드 크라잉넛을 뒤따르던 질문이 있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울분을 토해내고도 할 말이 남았냐는 것.
사십줄에 접어든 크라잉넛의 대답은 여전히 "그렇다"다. 다음 달 12일 5년 만의 정규앨범 '리모델링'을 발표하는 크라잉넛을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만났다. 오는 10월 27일엔 홍대 하나투어브이홀에서 콘서트도 연다. 김인수(44), 박윤식·이상면·이상혁(42), 한경록(41)은 기자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자 쑥스럽다며 장난꾸러기처럼 웃었다.
인터뷰 당일 제3차 남북정상회담 관련 보도를 접했다는 이들은 "한민족 우리끼리 사이좋게 지내겠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느냐"며 벅찬 소회를 전했다.
다음은 크라잉넛과의 일문일답.
--5년 만에 정규 8집을 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
▲ (김인수) 게을러서 그렇죠.(웃음)
▲ (한경록) 활동을 쉰 적은 없고요. 매년 싱글 음원을 내고 공연도 하며 휴식기를 가졌습니다. 저희는 작사·작곡을 직접 하다 보니 5년간 많은 이야기가 쌓였어요. 좀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을 들려드리게 돼서 좋습니다.
--앨범 타이틀 '리모델링'은 무슨 뜻인가.
▲ (한경록) 올해로 크라잉넛 결성 23주년이 됐는데 그동안 음악 플랫폼이 많이 바뀌었어요. 테이프에서 CD로, 음원으로, 이제는 유튜브로. 우리도 밴드를 리모델링해서 세상과 한 번 더 부딪혀보고 싶었어요.
아이러니한 건, 수록곡 '리모델링'에선 '내 인생 리모델링하고 싶어'라고 말하면서도 '견적 안 나와, 그래도 맨날 놀고 싶어 It' my life 오늘도 살아보는 거야 건배!'라고 원래대로 살겠다고 말하죠.(웃음)
--새 앨범에 12곡이나 담겼다. 음원 단위로 소비되는 시대에 드문 경우로 보인다.
▲ (박윤식) 로커의 고집이랄까요.
▲ (김인수) 어차피 힙스터들은 말만 재잘재잘해요. CD가 죽었다며 음원으로 우르르 몰려갔다가, 요새 LP가 다시 유행이죠. 정작 턴테이블조차 없으면서. 우리는 그냥 우리 하던 대로 하는 거예요.
▲ (이상면) 지난 5년간 싱글 위주로 내다보니 손에 잡히는 실물음반을 내고 싶었어요. CD 아트워크도 중요했고요.
--새 앨범을 미리 들어보니 장르가 굉장히 다양했는데.
▲ (한경록) 펑크록부터 올드스쿨 힙합까지 8∼9개 정도 요리가 나오는 셈이죠. 저희 장점은 지루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해요. 멤버들이 개성이 강한 만큼 공연할 때도 한 장르만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요.
▲ (김인수) 타이틀곡 '내 인생 마지막 토요일'에는 셔플 리듬을 조금 섞었어요. 불교 타악기 '바라'와 일본 오키나와 민속악기 '산바'도 썼는데, DIY가 별 게 아니에요. 집에 있는 악기로 한 거죠.
--크라잉넛에겐 아직도 '날것'의 느낌이 살아있다. 세월에 무뎌질 법도 한데, 비결이 뭔가.
▲ (이상면) 생각을 안 하면 돼요.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망해요. '잘 놀아야지!'라고 다짐하는 순간 꼰대가 될 수 있거든요. 그냥 흐르는 강물처럼 가는 거죠.
▲ (이상혁) 그래서 비결을 물으신다면 답은 '모른다'예요.
▲ (박윤식) 날것이 원래 크라잉넛의 느낌이에요.(웃음)
--크라잉넛은 홍대의 1세대다. 20년 동안 홍대는 어떻게 변했나.
▲ (한경록) 전 홍대에서 정말 열심히 놀았는데도 가끔 이방인이라고 느낄 때가 있어요. 여기서 음악 하던 사람들이 주변으로 밀려나는 느낌이랄까. 수록곡 '길고양이'에서 노래하는 것도 그런 감정이에요. 하지만 우울하지는 않아요. 타이틀곡 '내 인생 마지막 토요일'에서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친구들과 놀아보자고 격려하는 것처럼요.
--홍대의 터줏대감인 크라잉넛이 이방인같다니 씁쓸하다.
▲ (이상면)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작은 술집과 클럽은 밀려나고 유니클로와 H&M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시대죠. 뭐, 그걸 탓하는 걸 아니에요. 우린 관조적으로 지켜보는 거죠.
--올해 지산밸리록페스티벌도 열리지 않고, '록이 죽었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것 같다. 이런 세간의 이야기를 어떻게 보나.
▲ (김인수)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애초에 이걸로 장사하고 싶은 사람들이에요. 장사가 안되면 접어야 하니까 '이 판은 죽었어'라고 선동하는 거죠. '그래서 니들은 얼마나 안녕하십니까?'라고 되묻고 싶어요.
▲ (이상면) 록은 살아있던 적이 없어요. 언제나 비주류였지 '주류'가 아니었거든요. 오히려 거품이 걷힌 지금이 진짜 살아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 저작권료 내지 않고 함부로 음악을 못 틀게 저작권법이 바뀌었잖아요. 덕분에 한국에 음악 장르가 좀 다양해질 것 같아요. 기존에는 뮤지션들이 쉽게 소비되는 '이지 리스닝' 계열만 만들었는데, 이제 저작권이 소중해질 테니 진짜 하고 싶은 다양한 음악을 만들겠죠.
--지난 6월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로 비무장지대에서 공연했다. 이번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본 소감이 어땠나.
▲ (한경록) 감동적이었어요. 살아생전 기차 타고 유럽까지 가겠다던 우리 노래 '룩셈부르크'도 그런 꿈을 담은 거였죠. 우리끼리 사이좋게 지낸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남북 간 음악 교류가 시작된다면 저희는 어디 가서든 노래할 거예요. 격동의 시대에 저희 노래가 사람들에게 힘을 주면 좋겠어요.
▲ (박윤식) 70년 가까이 떨어져 살았지만 같은 말이 통하는 민족이잖아요. 이제 총부리를 거두고 만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탈북 출신 피아니스트를 만나서 아리랑 피아노 연주를 들은 적이 있는데요, 음악 수준이 정말 높더라고요. 교류하게 되면 의미 있을 것 같아요.
--새 앨범을 오래 기다린 팬들에게 한마디씩 부탁한다.
▲ (한경록) 크라잉넛은 이제 시작입니다. 리모델링해서 23년 왔으니 앞으로 23년 더 가야죠.
▲ (이상혁) 오랜만에 낸 음반인 만큼 정말 노력했어요. 평가는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 (이상면) 7집 때부터 프로듀싱을 직접 했는데요, 날림공사가 아니라 진짜 열심히 했어요. 베스트앨범도 계획하고 있으니 기대해주세요. 옛날 노래를 지금 목소리로 새로 담을 거예요.
▲ (박윤식) 크라잉넛은 사랑입니다. 거기까지만.
▲ (김인수) 상상하지 말고, 기대하지 말고 앨범을 열어보세요. CD가 들어있지 않는 한 놀라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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