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생산 급감, 벌쏘임 위협…외래종 등검은말벌 대책은 無

입력 2018-09-26 08:00
꿀생산 급감, 벌쏘임 위협…외래종 등검은말벌 대책은 無

(의정부=연합뉴스) 최재훈 기자 = "하루에 제가 설치한 포획 망에만 말벌이 1천마리 넘게 잡히는 날도 많습니다."

경남 마산에서 양봉업에 종사하는 A씨는 몇 년 전부터 급증한 말벌 떼에 몸살을 앓고 있다.

수시로 꿀벌들을 습격하는 말벌 때문에 꿀 생산이 눈에 띄게 줄었다. 말벌을 끌어들이는 트랩과 자체적으로 쓰던 포획 망에는 매일 죽은 말벌들이 수북이 쌓이지만 벌들의 '물량 공세'를 이기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말벌들은 바로 10여년 전부터 한반도를 뒤덮은 외래종 '등검은말벌'이다.



관계 당국의 사실상 방치 속에 세력을 키운 등검은말벌은 특히 양봉 농가에 큰 피해를 주고 있다.

등검은말벌 먹이원의 70%는 꿀벌로, '꿀벌 킬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2015년 지리산에서는 말벌 종별로 꿀벌 벌집을 하루에 몇 번 공격하러 오는지 분석하는 실험이 실시됐다. 그 결과 등검은말벌의 하루 공격횟수는 167회로, 좀말벌 12회, 장수말벌 23회 등 토종 말벌에 비해 압도적으로 꿀벌에 대한 공격성이 강했다.

국내 대표적인 말벌 연구자인 경북대학교 응용생명과학부 최문보 교수는 "말벌의 습격이 잦으면 꿀벌의 개체 수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벌들의 스트레스도 심해져서 꿀 생산량이 급감한다"며 "최근에는 꿀 생산으로 버는 수입보다 각종 비용이 더 들어 양봉업을 포기하는 농가도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꿀 생산뿐만 아니라 생태계 전반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우려도 크다. 꽃가루를 옮겨 식물의 번식을 돕는 꿀벌 개체 수가 줄어들면 꿀벌 의존도가 높은 과일, 채소농가를 넘어 한반도 전반 식물 생태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등검은말벌로 인해 직접적인 벌 쏘임 위험도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등검은말벌은 토종 장수말벌에 비해 크기도 작고 독성도 강하지 않다. 하지만 야산에서 주로 번식하는 장수말벌에 비해, 도심지역 적응력이 뛰어나 시민을 위협할 가능성이 더 크다.

최문보 교수는 "등검은말벌은 버려진 음료수 캔에 남은 음료나, 파리류까지 잡아먹으며 도심에서 적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도심지역 전체 말벌 중 등검은말벌의 점유율은 50∼60%로, 특히 사람을 위협하는 대형 말벌 중 점유율은 80∼90% 이상으로 파악됐다.

최 교수는 최근 벌집제거 신고가 급증하는 주요 원인도 등검은말벌로 보고 있다.

유난히 더웠던 올해 7월, 소방청에 따르면 하루 평균 1천건이 넘는 벌집제거 신고가 접수됐다. 올해 6월 말까지 벌집제거 관련 신고는 1만4천37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 증가했다.

벌쏘임 피해도 증가 추세다. 전국 소방서는 지난해 벌 쏘임 신고를 받고 7천324건 출동했으며, 2015년 7천35건, 2016년 7천265건 등 최근 3년간 증가 추세다.

최 교수는 "점점 더워지는 한반도 날씨는 아열대 지역이 고향인 등검은말벌의 번식에 유리한 환경"이라며 "시민들이 많은 도심지역에서도 활발히 번식해 벌집제거 신고도 늘고, 실제 벌에 쏘이는 사고도 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2015년 지리산 산청에서는 벌집 제거를 위해 출동했던 소방관이 벌에 쏘여 숨지기도 했다. 최 교수 연구팀이 사고 현장에서 발견한 죽은 벌들과 인근 지역 벌 생태계를 분석한 결과 소방관을 쏜 벌은 등검은말벌이 유력한 것으로 파악됐다.

등검은말벌로 피해가 발생하며 각 지자체에서는 여러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대표적인 대책이 벌을 유인하는 유인액을 이용한 트랩 설치다.

하지만, 피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성능 좋은 트랩의 경우 일 주일당 200∼250마리를 잡을 수 있다. 등검은말벌 둥지 하나가 3천 마리까지 번식하는 것을 고려하면 언 발에 오줌 누기 대책이라는 평가다.

양봉 농가에서 지속해서 피해를 호소하고 있고, 벌쏘임 신고도 늘고 있지만, 정부에서는 지금까지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조차 안 된 상태다.

전문가들은 최근 이슈가 된 붉은불개미처럼 이제라도 국가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연구와 대책 마련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문보 교수는 "단순히 벌집을 제거하거나 벌 개체 수를 줄이는 것은 오히려 말벌의 생존 본능을 자극해 세력이 급증하는 역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많이 늦었지만, 등검은말벌을 교란종으로 지정하고,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열대 외래종 등검은말벌(학명:Vespa velutina nigrithorax)은 중국 남부와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2003년 처음 발견됐을 때 학자들은 장수말벌 등 국내 토종 말벌에 비교해 크기도 작고, 추위에도 약한 등검은말벌이 겨울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현재는 휴전선 근처에서도 발견될 정도로 한반도 전역에 세력을 키우고 있다.

jhch793@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