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이 생각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입력 2018-09-21 16:38
수정 2018-09-22 00:39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신간 '마이클 샌델, 중국을 만나다'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수년 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우리나라에서 정의 열풍을 불러일으킨 미국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65).

하버드대학 명강의로 정평이 난 그의 명성은 세계적이지만 동아시아에서 특히 인기가 높다고 한다.

무슨 이유일까.

샌델 교수가 중국 철학을 전공한 미국인 학자인 폴 담브로시오와 함께 펴낸 최근 저서 '마이클 샌델, 중국을 만나다'(원제 Encountering China·와이즈베리 펴냄)를 읽으면 그의 정의론이 왜 하필 한·중·일 3국에서 특별한 반응을 불러왔는지 이해할 수 있다.



책은 임마누엘 칸트에서 존 롤스로 이어지는 서구의 전통적 자유주의 도덕론을 비판하는 샌델 교수의 공동체주의 정의론이 동양의 유교사상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다각도로 보여준다.

공동체주의는 개인을 독립적 존재가 아닌 공동체 일원으로 파악하고, 정의를 실현하려면 가치중립적 방임이 아니라 적극적 가치판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정의를 정의하려면 먼저 좋은 삶(미덕)과 그 토대가 되는 공동체가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이는 옮음이 좋음에 선행한다고 보고, 정의를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보장하는 중립적인 권리의 틀로서 바라보는 자유주의 도덕론이나 정치철학에 대립한다.

샌델 교수가 주창하는 서구식 공동체주의는 고대 그리스 사상가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철학에 뿌리를 둔다.

책 속의 중국 철학자들은 샌델 교수의 공동체주의가 공자의 유가 사상과 많은 공통점을 지닌다고 분석한다. 아울러 이들은 저마다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비판적 평가도 함께 내린다.

"유학자라면 샌델의 자유주의 비판에 대해 상당 부분 동의한다. 그러나 유가적 관점에서 볼 때 샌델의 공동체주의는 강한 공동주의적 사회로 나아가기에는 너무 얇다. 유학자들은 보다 두터운 공동체 개념을 주장한다. 그것이 인간의 번영에 결정적이라고 본다."(27쪽)

"공자가 생각하기에 정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하는 덕은 그들의 백성들이 갖추기를 원하는 덕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만약 백성들이 정직해지기를 원한다면, 정치 지도자가 먼저 정직의 덕을 갖추어야 한다. … 대조적으로 샌델과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서는 백성들이 갖추도록 정치 지도자가 영예롭게 하고 인정하고 또 포상하려는 덕은 백성들을 덕이 있게(정직하게, 선하게, 정의롭게 등등) 만드는 법들을 입법하고 운영하고 심판하는 덕 또는 기술과 능력이다."(98~99쪽)



샌델 교수는 책 후반부에서 중국 철학을 전공한 학자들의 견해에 하나하나 답변하며 자신의 견해를 발전시켜 나간다.

"중국 전통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조화가 사회적 삶의 제1덕목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부담을 지지 않는(무연고적) 자아에 대해 비판해왔고 사회계약론적 전통보다는 더 깊은 공동체관을 옹호해 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상 공동선에 대한 다원주의적 관념을 주장한다. 여기서 시민은 도덕적인 혹은 심지어 영적 문제들에 대해 공적이고 공개적으로 토론한다. 그런 토론은 전형적으로 조화보다는 소란을 일으킨다."(342~343쪽)

샌델 교수는 이러한 학문적 교류에 대한 단평도 덧붙인다.

"서양 사상과 접촉한 유가 및 도가의 철학적 전통은 대부분 서양(그리고 특히 북미) 철학과 정치 이론을 괴롭히는 편협성에 많이 필요했던 해독제를 제공한다."(378쪽)

샌델 교수에 대한 우리의 호감은 의식의 저류로 흐르는 정신적 전통이 그의 공동체주의에 쉽게 공명하기 때문이 아닐까.

김선욱·강명신·김시천 옮김. 464쪽. 1만7천원.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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