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성' 감독 "하루 1억원씩 투입…현대전처럼 그리고 싶어"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원래 스펙터클한 영화를 좋아했어요. 드라마와 캐릭터를 넘어 시각적 요소를 집어넣어야 재밌는 영화라고 생각했죠."
'안시성' 김광식(46) 감독이 처음으로 사극에 도전했다. 그것도 그동안 스크린에서는 한 번도 다룬 적이 없는 고구려 안시성 전투를 다룬 영화다. 순제작비만 185억 원이 투입됐다. 10억~30억 원대가 들어간 그의 전작 '내 깡패같은 애인'(2010), '찌라시: 위험한 소문'(2014)과는 제작비 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김 감독은 "나중에 알았지만, 촬영 기간에 제작비가 하루 1억 원꼴로 들어갔다"면서 "배경은 고대지만, 현대전처럼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김 감독을 만나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김 감독과 일문일답.
-- 왜 안시성 전투인가.
▲ 원래 제작사에서 '더 맨'이라는 제목으로 연개소문과 양만춘, 당 태종, 이 세 사람이 주인공인 시나리오를 줬다. 그러나 드라마가 강하고, 전쟁은 마지막 클라이맥스에만 있어서 와 닿지 않았다. 양만춘 이야기만으로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봤고, 제작사 동의를 얻어 제가 시나리오를 다시 썼다. 처음부터 전쟁을 시작하고 나서 인물들의 반응과 움직임 등을 담고 싶었다.
-- 전투장면이 상당 비중을 차지한다.
▲ 고구려 정부군보다 작은 안시성 부대가 당 태종 부대와 싸워 이겼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기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야 했다. '저래서 이길 수 있었구나' 느낄 수 있게 관객을 납득시키려면 전투장면을 많이 넣어야 했다.
-- 총 4번의 전투장면 중 가장 공들인 부분은.
▲ 당나라군이 야간에 안시성을 기습 공격하는 장면이다. 양만춘 개인 활약이 등장하는데, 엄청난 화력을 집중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공성탑처럼 동서양에 다 있는 공성 무기를 새롭게 디자인해 녹여냈다. 운제(높은 사다리), 충치(성벽을 들이받을 때 쓰는 수레)와 같은 공성 무기는 동서양이 다 썼다. 공성 무기를 공격하는 방법은 넘어뜨리거나 불태우는 것이다. 실제 전투에서 쓰이는 전술을 응용해 구현했다. 안시성 전투를 어떻게 했는지는 사료에 나와 있지 않아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 우리나라에 있었던 성을 둘러싼 전투 자료를 모두 공부하고, 서양 전투도 참고했다.
-- 기존 사극과 차별점은.
▲ 사극 액션을 가급적 현대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이라크전처럼 특수부대가 직접 현지에서 카메라를 들고 가면 그들의 시선으로 보는 것처럼, 전쟁 자체는 고대지만 현대전을 보는 것처럼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CF 촬영에 주로 사용되는 로봇암과 초고속 카메라를 사용했다. 배우들의 빠른 움직임을 로봇이 쫓아가면서 담아낸다. 한국영화 중 액션을 위해 이 장비가 도입된 적은 처음이다.
-- 양만춘이 보여준 리더십이 인상적이다.
▲ 요즘 말로 '서번트 리더십', 즉 섬기는 리더십이다. 권위가 아니라 사람들과 소통하고 어울리는 사람이 고구려 안시성에 어울리겠다 싶었다. 이 영화는 실제 있었던 사실을 다루지만 리얼하게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전설과 실제를 아우른다. 양만춘이라는 사람 자체도 실존 인물 여부를 놓고 논쟁도 있다. 이 작품 속 양만춘은 이 시대에 새롭게 해석한 인물로, 앞으로 각 시대에 맞게 해석한 양만춘이 또 나올 수 있다.
--조인성을 캐스팅한 이유는
▲ 만화 '슬램덩크'의 강백호 같기도 하고, 정제되지 않은, 거칠면서도 야성적인 느낌도 났다. 이런 캐릭터를 살리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처음 시나리오를 조인성에게 건넸을 때 조인성은 부담을 느껴 거절했다. 그래서 조인성 캐릭터에 어울리게 시나리오를 고쳐 다시 줬다. 조인성은 이 영화에 대한 책임감이 남달랐고, 촬영하면서 진짜 성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 양만춘 개인의 영웅담만은 아닌 것 같다.
▲ 마지막에 사물(남주혁)이 양만춘에게 "안시성과 고구려를 지켜줘서 감사하다"고 말하자, 양만춘이 "모두 함께한 것"이라고 답한다. 여기에 방점을 찍고 싶었다. 개인의 활약이 아니라 군사들과 성민들의 희생 속에서 모두가 하나가 돼서 승리를 이끌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 순제작비가 185억 원이 들었다.
▲ 강원도 고성에 세트를 짓는데 20억 원이 들었다. 보조 출연자 등 인력도 많이 투입됐다. 뒤늦게 알았지만, (촬영 기간에) 하루에 1억 원 정도 들었다고 하더라. 마지막 토산 장면은 함양시 협조를 얻어 흙을 직접 쌓아서 실물 3분의 1 크기로 지었다. 극 중 10m 이상 높이의 공성탑도 실제 만들었다. 예산을 더 늘리면 수익성이 없어서 예산을 지키려고 노력을 했다. 처음부터 중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어서 중국에는 수출할 수 없다.
-- 조연 캐릭터 설정은 어떻게 했나.
▲ 고구려 시대 병종으로 나눴다. 추수지(배성우 분)는 창을 쓰는 부대를 이끌고, 파소(엄태구)는 기마 부대, 환도수장 풍(박병은)은 칼을 쓰는 부대 느낌을 살렸다. 예를 들어 추수지는 창을 쓰니까 강하고, 파소는 말을 타니까 날쌔고 그런 느낌이 들도록 했다.
-- 엄태구와 설현의 멜로 연기가 인상적이다.
▲ 엄태구는 지금까지 악역을 많이 했다. 미남은 아니지만, 개성 있는 배우가 멜로 연기를 하면 의외성 때문에 재미있을 것 같았다. 마치 '미녀와 야수'처럼. 태구 씨는 말이없는 사람으로, 설현씨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연기한 것 같다.
-- 비극적인 드라마도 담겼다.
▲ 전반부가 전쟁의 승리를 그렸다면, 후반부는 죽음을 통해 전쟁의 비극성을 드러내고 싶었다. 전쟁을 승리로만 그려 낭만화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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