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도깨비와 춤을·우리가 통과한 밤
추남, 미녀·아날로그·시칠리아에서 본 그리스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 도깨비와 춤을 = 작가 한강의 아버지이기도 한 유명 원로 작가 한승원의 새 장편소설.
"나는 살아있는 한 글을 쓰고, 글을 쓰는 한 살아있을 것이다"를 화두로 50년이 넘도록 치열하게 쓰고 성찰해온 노(老)작가의 삶과 문학이 응축된 작품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나누어 가진 쌍둥이 분신을 두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자기 참모습'을 찾는 문학적 여정을 펼친다. 두 주인공은 똑같이 79세로, 장흥에 사는 프로 작가 한승원과 남해에 사는 아마추어 음유시인 한승원이다. 이들의 무의식 세계를 지배하는 '도깨비'는 장흥의 한승원에게는 "자존심, 저항 의식, 보호 본능, 정체성"을, 아내가 먼저 죽어 절망과 고독 속에 홀로 남은 남해의 한승원에게는 "아직 남아 있는 시간"을 일깨우며 그들의 노화한 혈관에서 열일곱 소년의 뜨거운 피를 각성시킨다.
소설은 노년에 이른 인간이 인생의 의미를 통찰하고, 삶과 죽음을 관조하며, 결국에는 죽음을 아름다운 생의 의지와 분투의 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위즈덤하우스. 300쪽. 1만4천원.
▲ 우리가 통과한 밤 = 기준영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작가는 2009년 문학동네신인상에 단편소설 '제니'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해 첫 장편소설 '와일드 펀치'(2012)로 창비장편소설상을 받기도 했다.
장편으로는 6년 만에 선보이는 이 소설은 지난해 봄부터 올봄까지 계간 '문학동네'에 '비밀의 꽃'이란 이름으로 연재된 작품이다. 마흔 살을 앞두고 난생처음 화제의 연극무대에 출연하게 된 '채선'과 그 연극을 보고 단숨에 그녀에게 반한 20대 '지연'. 두 여자가 서로를 향한 이끌림을 강렬하게 느끼며, 혹은 그 마음을 애써 부인하는 사이 각자의 결핍이 서서히 메워지는 과정을 담백하게 그린다.
문학동네. 284쪽. 1만3천원.
▲ 추남, 미녀 =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프랑스 작가 아멜리 노통브 신작 소설.
샤를 페로의 동화 '고수머리 리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추하지만 천재인 남자와 아름답지만 멍청해 보이는(사실은 멍청하지 않은) 여자를 두 주인공을 등장시켜 따뜻한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두 주인공은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소유하는 권력의 두 축인 지식과 미모를 대표한다. 이들은 처음에는 박해받지만, 점차 자신들의 장점을 이용해 자존감과 권력을 획득해 나간다. 번역자인 불문학자 이상해 씨는 '느빌 백작의 범죄', '샴페인 친구' 등 다른 노통브의 작품을 번역한 바 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페로의 동화 원본도 번역해 책 말미에 실었다.
열린책들. 232쪽. 1만1천800원.
▲ 아날로그 = 일본의 유명 배우이자 영화감독인 기타노 다케시의 소설.
'무색소 저염식 순애소설'을 표방한다. 도쿄의 건축디자인 사무소에 다니는 30대 독신남 사토루를 주인공으로 '아날로그'식 순정한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사토루는 어느 날 우연히 들른 카페 '피아노'에서 신비로운 여성 미유키를 만나 한 순간에 마음을 빼앗기고, 서로 연락처도 나누지 않은 채 목요일 저녁마다 만나기로 약속한다. 만남이 거듭될수록 그녀에게 점점 빠져들고, 오사카 전근을 앞두고 프러포즈를 결심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녀가 사라진다.
작가 본인의 순탄치 않은 성장 과정에서 어머니와 얽힌 유명한 일화들이 소설 속에 녹아있다고 한다. 감독 스스로 영화화를 공언하기도 했다.
이영미 옮김. 레드스톤. 184쪽. 1만3천800원.
▲ 시칠리아에서 본 그리스 = 국문학자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의 시칠리아 여행기.
85세인 저자는 자신의 마지막 시칠리아 방문이 될지도 모르는 이 여행을 준비하며 많은 현실적 문제들을 고민해야 했다고 한다. 집을 비우는 동안 혼자 있을 남편에 대한 미안함, 집안일에 대한 걱정,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건강까지. 그러나 여행을 사랑하는 저자는 오랫동안 꿈꿔온 축복의 땅에 도착하자 마치 기적처럼 컨디션을 회복해 마음껏 신들이 살던 곳을 누볐다.
"어쨌든 무사히 돌아온 것은 일행을 위해서도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85세니까 내가 최고령자여서 폐를 끼칠까 봐 조마조마했던 것이다. 다시는 못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니 여행하는 시간들이 아주 귀하게 느껴졌다. 시칠리아는 자연이 더없이 아름다웠고, 도시마다 많은 양식의 건물들이 있어 볼거리가 많았다."
중학교 때 6.25를 겪은 저자는 식민지 역사를 지닌 시칠리아와 이탈리아의 역사를 반도 국가와 섬나라라는 지리적 요소를 통해 풀어가고 그것을 조망하는 데 남다른 눈길을 보낸다.
에피파니. 412쪽. 2만3천원.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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